죄의 개념이 모호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이 희미해집니다.
선명하지 않으면 삶이 흐려집니다.
원죄에 대한 개념을 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조직신학자들의 표현이 모호합니다.
한국의 장로교단에서 주로 사용하는 루이스 벌꼽의 원죄에 대한 정의입니다.
"모든 사람은 아담과의 관계로 인해서, 타락 후 죄의 신분과 상태에서 태어난다.
이 상태를 원죄라고 하며, 또 이것은 인간 생명을 더럽히는 모든 본죄의 내적 근원이 된다.
그것은 두 요소를 내표하고 있다(기독교 신학개론, 루이스 벌콥 저, 신복윤 역, p.156)."
루이스 벌꼽의 말을 빌리면 원죄는 아담 때문에 그 후손은 모두 죄의 신분과 상태에서 태어남으로 봅니다.
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좀 쉽게 다루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죄 개념이 모호하면 죄의 개념 자체가 흐릿합니다.
아담이 어떻게 해서 죄의 신분과 상태가 되었습니까?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곧 성령의 떠나심입니다.
인간이 죄의 신분과 상태로 떨어진 것은 곧 성령이 떠나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런 상태를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의의 종 곧 순종의 종이 되거나,
사탄의 지배 아래서 죄의 종의 상태로 존재함을 알려줍니다.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원죄란 성령이 떠나버린 죄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아무도 성령의 내주하심 아래서 태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했던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원죄의 개념으로 본 <죄의 신분과 상태>란 구체적으로 성령의 부재입니다.
성령이 부재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의가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나라) 아래 거하지 못한 진노의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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