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불교식으로 해석하려는 산상수훈???

오은환 2016. 1. 12. 19:45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 (인자로 말미암아 - 눅6:22)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두 구절은 서로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가난하게 된 자는 복이 있고, 반드시 상급을 받게 됩니다.

계시록 역시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2:9)

 

문제는 복음서를 해석함에 있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마음을 비운 상태>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해석이 됩니다.

 

불교도들의 수련의 목적이 <해탈>입니다.

더 이상 윤회가 반복되지 않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려 애씁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신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탈이 무엇이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기도 합니다. 

"촛가 다 타고, 촛불이 심지에서 막 꺼진 상태"로

그 고요함을 해탈에 빗대어 설명하곤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상태나 해탈은 같은 것일까요?

다르겠지요? 불경과 성경이 어찌 같겠습니까?

어떻게 해석하면 같고, 또 어떻게 해석해야만 다를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청중들의 힘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라 했다면 불경과 다를 바 없습니다. 

반대로 청중들이 구속과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면 불경과는 전혀 다름을 보여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를 불경과 유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간디 역시 복음서를 읽다가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음으로 

성경을 하나의 도덕경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산상수훈을 어떻게 읽고 있습니까?

불교식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구속과 성령이 없는 상태에서 무거운 짐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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