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충성된 증인

오은환 2016. 2. 24. 15:04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중의 하나는 주의 재림을 사모함이었습니다.

특별히 사도들은 재림 하시는 주님 앞에 서는 순간처럼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재림 하시는 주님 앞에서 흠도 없이, 점도 없이 순결한 신앙으로 만나길 원했습니다. 

 

계시록 1:4-6절은 장차 주의 재림의 때에 나타날 삼위 하나님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했습니다(계1:4). 

아들의 재림 때에 함께 오셔서 아들 예수님을 높이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4절에서는 성부께서 아들 예수님과 잠자던 성도들까지 다 데리고 오시겠다고 표현합니다.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 예수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4) 아멘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게 묘사합니다.

 * ...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계1:4)

계시록의 여러 곳에서 성령님을 일곱 영으로 표현합니다.

 *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4:5, 5: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계3:1)

부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령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나오는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신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마지막으로 성자 예수님에 대해 언급합니다. 

왜 마지막으로 했을까요?

순서대로 한다면 성부 다음에 곧 바로 성자 예수님이 나와야 합니다. 

제일 뒤에 나온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길고,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와 연결되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한 마디로 요약해서 <충성된 증인>으로 묘사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충성하였다고 연설명합니다.

예수님도 스스로를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라고 계시록 3장 14절에 고백합니다.

 

요한계시록 난해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쉽게 이해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교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충성된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충성의 강도는 매우 깊습니다.

목숨을 걸고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계시록 2장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는 많은 핍박이 따라 다녔습니다.

안디바라는 성도가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생명되는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그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목숨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안디바를 향해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이라 그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 줍니다(계2:13). 

 

어찌 충성된 증인이 안디바 뿐이겠습니까?

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의 충성된 일꾼들 역시 <충성된 증인>으로 칭함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충성스런 증인이 되는 길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라 옵니다. 

예수님처럼, 안디바처럼 목숨을 드려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또 다른 성도들처럼 궁핍함 즉 지독한 가난함이 따라 오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고립되어 고독한 존재로 전락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거짓된 가르침들을 분별하고 싸워야 합니다. 

 

계시록은 우리 성도들에게 충성된 증인의 삶을 요구합니다. 

평소의 삶에서도 그렇고 대 환난의 시간 속에서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 환난이 온 후에 주의 재림이 있다는 말에 두려워합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이런 대 환난을 이길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한 접근은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를 드러낸 것입니다. 

대 환난을 견디느냐, 못 견디느냐는 이야기의 초점을 벗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충성된 증인>이 되느냐, 못 되느냐로 접근해야 합니다. 

 

요한이 보았던 14만 4천이나 흰 옷 입은 무리들은 대 환난을 통과하면서(계7:14) 충성된 증인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주저함 없이 따라 가는 자들이었고, 진리를 버리지 않았으며, 증인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계14:4-5).

 

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님처럼 <충성된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충성된 증인이 될 수 있을까요?

매우 핵심적인 질문이면서 우리 신앙의 본질을 보게 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 제자들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명하십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증인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일들을 직접 목도해야 합니다.

후대의 증인들은 선진들이 전해준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알아보아야 합니다.

불확실한 것을 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증인되는 일에 자신이 없어 합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의 핵심 메시지가 자신은 믿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만큼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확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가장 사랑한 증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은 <최고의 사랑>이었습니다.

목숨을 나눈 사랑보다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랑을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사랑하면 된다고 믿는 것은 잘못된 복음 이해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최고의 사랑 즉 목숨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을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부활에 대한 갈급함이 있습니까?

재림을 기다리는 애절함이 있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습니까?

 

이런 것이 없이는 결코 충성된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증인의 삶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신앙생활이 의무감 때문에 피로가 쌓여 피곤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요한은 계시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어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자로 표현합니다.

 *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1:2)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창조부터 재림까지 모두 다 들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어느 곳을 펼쳐도 창조와 재림의 모든 말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없이는 확신이 생길 수 없습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온전한 증인이 되길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증인이 되기 위해 말씀을 이해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고 할 때,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거짓을 진리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런 이단들은 힘으로 물리칠 수 없습니다. 

숫자로 이길 수 없습니다. 

피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온전한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충성스런 증인들이 일어날 때 비로소 사라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충성된 증인들이 악한 사탄과 그 추종자들 즉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 그리고 악인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되심을 증거하는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충성된 증인들은 장차 나타날 영광을 바라보았기에 대 환난의 핍박받는 시간을 가볍게 여겼고 이겼습니다.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비록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질지라도 장차 나타날 영광을 보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악인들이 처할 영원한 지옥 불 못의 형벌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증인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의 사명이 다 끝나면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광중에 보고 만나게 됩니다.

 

 *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계15:2-3)

 

주의 재림 때 일어날 휴거의 급박한 순간과 장엄함을 묘사한 구절입니다.

홍해 앞에서 막혀버린 이스라엘과 모세가 애굽 왕과 그의 거친 군사들의 손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순간

모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출애굽기 15장의 승리의 찬가입니다.

 

주의 재림 때 다시금 모세의 노래를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제목이 마치 모세의 노래처럼 <어린양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적그리스도의 모진 핍박과 목베임 속에서 전멸당하여 온 세상에서 성도들의 흔적조차 사라질 초토화된 상태에서

성도들의 애절한 탄식 소리를 들으시면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성도들이 급박하게 악한 자들에게서 벗어나서 부른 노래가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에 우리들의 목숨이 건짐을 받았다는 놀라운 고백의 노래입니다(계15:3-4).

말 탄 자들을 바다속에 내 던지며 이스라엘을 건졌던 노래와 동일합니다.

 

충성된 증인들은 이런 놀라운 사실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한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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