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복음서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성경 토론

오은환 2016. 2. 24. 15:17


요한복음 3 장에 나오는 토론은 성경이해에 많은 유익을 제공합니다. 

단지 니고데모 개인적인 생각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당대 성경학자들의 기본적인 틀을

끄집어 내어 토론한 것입니다.

 *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요3:11,12) 


어떻게 이스라엘이 구속함을 받았고 거듭났는지 묻는 것입니다. 

시험으로 보자면 <난이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성경의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을 설교하고 공부하면서도 <구속과 거듭남>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타 종교의 경전과 성경을 동급으로 취급하는 실수를 연발하면서 탄식이 쏟아집니다.

도대체 구약은 뭘 말하고 싶은거지??? 


성경에 능한 니고데모였지만 가장 근본이되는 <구속과 거듭남>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 편에 더 가까운가요?

니고데모처럼 구약 속에서 구속과 거듭남을 모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처럼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이 니고데모를 책망한 구체적인 이유는 뭘까요?

 *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요3:10)


이스라엘의 거듭남이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아니면 생소한 것입니까?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니고데모 편에서 그를 두둔합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거듭남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식입니다.

"오순절이 되어야 거듭남이 일어나는데 그걸 어떻게 안담?" 


성경연구의 기본은 본문 속에서 어떤 동사를 사용했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거듭남이 오순절 이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미래 동사>를 사용했겠지요?

그러나 니고데모 이야기 가운데 단 하나의 미래동사도 없다는 사실을 아신가요?


 * <거듭나지> 아니하면...(요3:3,5)

   여기서 거듭나다라는 동사는 현재형(is born)을 사용합니다.


 * 육으로 <난> 자, 성령으로 <난> 자..(요3:6)

   '나다'(having been born)는 완료 분사입니다. . 

   즉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요3:11)

   여기서 '보다'(have seen)라는 동사는 미래의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부터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까지 동의했다면 이젠 구약 성경에서 어떻게 구속함을 받았고,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해서 거듭나게 했는지를 찾으면 됩니다. 

니고데모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몰랐던 사실을 알 때

구약을 복음으로 받을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됩니다. 


혼동스러운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창녀나 세리, 삭개오가 돌아오는 것은 거듭남이 아닙니다.

회개입니다.


이들에게 구속과 거듭남은 회개보다 훨씬 이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구속함을 받고 거듭난 자들도 잃은 양이 될 수 있을까요?

잃은 양의 상태로 계속가다가 죽으면 천국에 갈까요?

못 갑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직접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구속함을 받고 거듭나서 성령이 그 안에 있는 구약 백성들중에 일부는 

어떻게 그 은혜를 상실하게 되었을까요?

어떤 자들은 절대로 은혜를 상실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 비유들을 통해 보면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돌밭, 길가, 가시덤불에 있는 자들은 그 상태로 있으면 지옥갑니다.

이들이 어떻게 신앙을 상실하게 되었습니까?

말씀이 없고, 환난이 두렵고, 이 세상의 근심, 돈, 쾌락으로 인해

그 신앙이 죽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보장이라는 엉뚱한 소리로

살아야 할 영혼을 영원한 형벌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구약 이스라엘은 어떻게 구속함을 받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까요?

왜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놀라운 복음을 스스럼 없이 증거할까요?

 *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자)> 여호와가 말하노라...(사43:14)  


이사야는 니고데모가 가지지 못한 복음의 진수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구속과 성령으로 거듭남의 온전한 복음을 알고 기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