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언약을 통해 본 복음

오은환 2016. 2. 25. 18:49

고고학적 발견이나 문화적인 새로운 이해는 더 풍성한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노아의 홍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그 방주가 실제로 발견된다면

더 견고한 믿음을 선사할 것입니다.

반대로 발견되지 않는다해도 우리의 믿음을 상실케 하지는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의 기본 틀을 잘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움은 참된 소망과 믿음을 제공하기에 매우 유익합니다.

성경의 여러 언약들을 통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모든 언약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한다.

 

언약은 목적은 단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기 위함입니다(창17:7).

또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자녀를 <어떻게> 삼을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구속입니다. 

구속을 통해 의롭게 하시고, 성령을 주어 거룩하게 하십니다.

이 과정을 거듭남으로 표현합니다.

 

2. 아담 언약

 

창조 후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맺은 언약입니다.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언약의 외적 형태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았던 아담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하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길(구원, 영생)을 알려줍니다.

 

구속을 통해 성령이 내주하는 거룩한 백성된 아담과 인류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의미합니다.

 

3. 아브라함 언약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언약을 맺음으로 할례를 행하게 했습니다.

일명 할례 언약이라고도 불립니다.

 *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행7:8)

 

할례 역시 아담언약에 나타난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처럼,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심을 전제로 주어진 것입니다.

할례의 실체가 누구인지 잘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와 성령입니다. 

 

 *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3:3)

 

이것을 알고 행할 때 그 가치는 반짝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모르면 할례 자체를 구원의 길로 착각하게 됩니다.

 

4. 시내산 언약과 율법

 

이 부분에 와서 많은 혼란이 일어납니다.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과 전혀 다른 언약일까요?

많은 신학자들이 시내산 언약은 율법이고, 

아브라함 언약은 복음이라고 둘을 갈라 놓습니다.

 

시내산 언약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주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 있는 백성들이기에 받은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맺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자녀이기에 맺었던 것이 시내산 언약입니다.

 *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4:22)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자녀삼기 위해 맺은 언약이 아닙니다.

이미 자녀되었던 그들이 그 자녀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자녀됨의 정체성에 대해서 잘 알려준 것이 율법입니다.

시내산 언약 즉 율법 그 자체를 지켜서,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라는 말도 아닙니다.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진행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자체가 훌륭해서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신7:7),

율법을 통해 죽어야하는 죄인임을 먼저 드러내고(갈3:22),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의로워지고(갈3:22-24),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하는 거룩한 자가 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5. 성소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아브라함 언약 속의 할례, 시내산 언약의 율법과 더불어,

성막(성소, 성전) 역시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는 백성이기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알면 전혀 다른 엉뚱한 복음이 됩니다.

 

누가 성소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할례만 보아도 마음과 육체의 할례를 행한 자라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이방인들도 그렇습니다. 

 

 *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겔44:9)

 

선악과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구속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단절 됨을 알려줍니다.


6. 세례

 

세례는 구약의 할례와 같습니다.

다만 실체가 오셔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행하는 의식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과 그 분이 보낸 성령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 또 그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거듭남),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은 속죄함을 받을 때가 곧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순간 성령이 거듭나게 하십니다. 

세례의 실체 역시 그리스도(행19:5)와 성령(행1:5)입니다. 


7. 모형과 실체

 

구약은 그리스도의 구속에 대해 모형으로 존재했던 것들입니다.

생명나무, 할례, 율법, 절기, 예법 등이 모두 모형입니다.

모형은 실체가 오면 그 역할이 끝이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에 임무가 끝난 것입니다.

 

모형의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나니 바로 그리스도와 성령입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부분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을 몰랐기에 알고 있었던 복음이 희미하게 된 것입니다.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을 피 터지게 싸운 꼴이지요.    

 

성경은 신구약이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그리스도를 다채로운 형태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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