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나 드라마에서 하이라이트가 있듯이 성경 역시 그런 깊음이 있습니다.
역사의 순간이 목적을 이룰 시점이라면 목격자들은 의미가 남다를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마지막 날>을 하이라이트로 조명합니다.
구약을 읽었던 유대인들은 모두 마지막 날을 인류의 하이라이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날이 다가왔다고 했을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1. 예루살렘 입성과 환호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했을 때 유대인들의 외침은 대단했습니다.
온 성이 들썩였고,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 바닥에 펼쳤으며,
나뭇가지를 들고 외쳤습니다(마21:8).
*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마21:9, 시118:25,26)
그리스도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에 입성하면(말3:1)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이방나라에도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그 순간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며, 악인들이 의인들의 발 앞에 굴복하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말3:18).
2. 마지막 날 = 부활 신앙
구약에는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는 듯 보입니다.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은 듯 한데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두철미하게 부활신앙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 내가 아나이다(요11:21-22)
이스라엘은 메시아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때가 마지막 날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날, 메시아가 왕위에 오르실 때 세상 나라의 굴복뿐만 아니라 죽었던 모든 성도들이 부활하여,
의인들과 함께 다스릴 것을 확신했습니다.
3. 서로 다르게 알고 있는 마지막 날
아쉽게도 이스라엘은 그리스도의 초림이 마지막 날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초림은 고난을 위해 왔고, 다시 오실 때가 바로 마지막 날로 알려줍니다.
이 간격을 좁히지 못했을 때 이스라엘은 예수님에 대해 크게 실망했습니다.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그 후)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6)
*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눅17:25)
이스라엘이 가진 이런 메시아의 시간에 대해서 오늘 신약의 성도들이 쉽게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구약 성경의 많은 부분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세례 요한 역시 동일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4. 부활 신앙과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의 도래
이스라엘이 꿈 꾸었던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아의 오심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이 왜 메시아를 열렬하게 기다렸는지 이해를 해야 합니다.
* (동방박사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2:2-3)
* 이 약속(메시아)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바라는 바인데...(행26:7)
이스라엘이 고대했던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는 의인의 부활까지 일어나는 엄청난 사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부활 신앙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 속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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