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부분입니다.
두 증인은 죽임 당한 후 삼일 반 동안 방치됩니다.
그들의 시체는 큰 성 길가에 버려졌습니다(계11:8).
사흘 반이 지난 후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납니다.
*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계11:11)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을 부활시켰듯이(롬8:11), 두 증인을 다시 살린 것입니다.
두 증인의 사역의 핵심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들의 증언을 들어야 할 대상은 유대인이었습니다.
두 증인의 행하는 사역은 선지자로서(계11:10) 예수님의 사역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한 곳이 곧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곳입니다(계11:8).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와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증인이 다시 살아남의 시간은 예수님과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후 3시쯤 숨을 거두었고, 주일 새벽에 부활했습니다.
날수로 보면 삼일입니다만 시간상으로는 이틀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두 증인은 사흘 하고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소생됩니다.
사흘 반이라는 시간이 주님의 죽임당한 시간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 역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육체가 그대로 소생된 것이 아닙니다.
영화로운 신령한 부활체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러면 두 증인의 다시 살아남은 부활일까요, 소생일까요?
정황상 소생으로 보아야 합니다.
두 증인의 소생을 메시아를 거부한 유대인들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고 있습니다.
T.V나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살았던 자들은 이 말씀의 이해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 백성들과 족속들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계11:9)
두 사람의 시체를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중계 하듯 보고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시대는 이런 일들이 너무 쉬워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두 증인이 성령의 역사로 다시 소생되어 일어났을 때의 상황입니다.
두 증인은 <그들의 발>로 일어납니다.
이 말은 죽었던 그 모습에서 그대로 살아난단 의미입니다.
마치 죽었던 나사로와 나인성 과부의 아들처럼 일어납니다.
두 증인의 승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했던 엘리야처럼 보면됩니다.
하나님은 불 말과 불 병거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구름을 통해서도(계11:12) 사람들을 올릴 수 있습니다.
성도의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 할 때 일어납니다.
이전에 죽은 자들이나 살아서 하늘로 올라간 분들은
아직 부활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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