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동일한 부활관

오은환 2016. 9. 26. 23:22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은 버릇입니다.

성도라면 무시당하는 것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자존감이 강해서 무시함을 느낄 때 감정이 더 상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 누군가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신약이란 특권으로 구약을 보게 되면 구약 성도들을 은연중에 무시하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교만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어떤 유명한 책을 보는데 구약에서 부활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교만한 것인지 분간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마르다의 부활 신앙고백은 오늘날 신약 성도들보다도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


마르다와 예수님은 부활의 시점을 잘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는 이유를 바로 <영생을 소유함>에서 찾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이 곧 영생을 소유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이 곧 영생과 부활로 연결됩니다.


마르다와 구약 성도들은 확고한 부활신앙을 어디에서 찾았을까요?

바로 죄악을 구속하신 메시아입니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가 곧 메시아의 살과 피를 찢기고 흘리심을 예표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결코 멍청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이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라 현명한 자들임을 인정합니다. 

영생을 어떻게 얻는지 성경을 통해 깊은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시인합니다.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구약성도들의 뚜렷한 부활관은 바로 예표로 주신 것들에서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입니다. 

 *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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