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신구약의 대조와 통일성

오은환 2016. 9. 18. 00:26

히브리서는 구약과 신약을 선명하게 대조하면서도 그 뿌리가 하나임을 들춰냅니다.

성경 3/4을 차지하는 구약은 그 존재의 의미가 분명합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이 어떤 책인지 그리고 구약을 바탕으로 나온 신약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이 구절을 통해 구약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먼저 알려줍니다.

구약의 선지자는 생각보단 다양한 부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모세까지도 선지자로 선정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아브라함)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창20:7)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신18:15)


기록되지 않았지만 더 많은 선지자들이 모세 이전에도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에녹이나 노아 같은 선진들도 선지자의 부류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어떻게 말씀을 전달하셨을까요?

이 부분도 구약의 모든 전달 형태를 보아야 합니다. 

모세 시대에 만들어진 성막이나 절기들 또 광야에서 주었던 예표들(고전10:1-4)과 할례, 제사, 율법 등과 더불어, 

꿈이나 환상, 말씀 등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한 마디로 구약은 실체에 대해 여러 예표들을 주어서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배려가 

담긴 복음입니다. 

그러면 이 다양한 도구들이 무엇을 증거했을까요?

바로 구속주로 오실 메시아입니다. 


예표는 단지 그 자체에는 힘이 없습니다. 

예표 너머의 실체를 바라보게 함으로 효력이 발생합니다. 

즉 예표를 통해 구속하실 메시아 보고 믿음으로 구속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일은 사람의 생각 자체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 기록된 바(구약성경에서 인용),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가 같으니라(고전2:9)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전2:10)  


바울은 고린도 교회 이방인 성도들에게 구약 성경을 인용해서 위의 구절을 증거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철저하게 감추어졌던 복음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복음을 미리 맛보고 참여했단 말입니까?

바로 구약의 이스라엘이 이런 복을 아브라함 때부터 누렸습니다. 


 *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사64:4)


오직 구약 백성들인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이런 깊은 사랑과 능력을 경험했던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백성들이 예표들을 통해 보았던 메시아는 이제 성육신하여 실체로 오셨습니다.

그것이 신약이며 더 이상 그림자로서 예표들이 불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실체와 그림자인 예표들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 하나입니다.

만일 예표를 통해서 메시아를 보지 못했거나 어려웠다면 그 모든 책임이 하나님게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다 아시고 성령을 주셔서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말할 수 있는 입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예표들도 비록 실체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메시아를 믿고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거하며,

그러므로 실체를 통해 신앙의 본질을 보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큰 특권이 있는 반면에 그에 합당한 책임 또한 크다는 것을 증거하며,

고난 앞에서 배교하려는 로마 히브리인들을 그리스도 앞에 다시 세우는 의도로 쓰여졌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결코 구약이 구원을 이루는데 부족하거나 결함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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