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몸을 입은 성도들을 어떤 용어로 불러야 할까요?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들은 '푸쉬케'란 단어를 사용합니다(계6:10, 20:4).
예수님 역시 육체와 영혼을 분리되는 상황을 염두하면서 푸쉬케를 사용합니다.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10:28)
영혼은 성도의 죽음과 재림 사이에 새 예루살렘 성(천국)에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계6:10).
히브리서에는 푸쉬케 대신 퓨뉴마(영)란 말로 나타납니다(히12:23).
푸쉬케와 퓨뉴마 사이에 큰 장애물은 없게 보입니다.
왜 그런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 혹은 혼으로 불리는 푸쉬케와 영으로 불리는 퓨뉴마는 같은 장소에 존재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바울은 부활장(고전15장)에서 매우 특이한 말을 사용합니다.
*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4)
몸으로 표현된 곳은 '소마'라는 말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신령한 몸이든 육의 몸이든 몸은 소마입니다.
그런데 육의 몸에서 육은 놀랍게도 푸쉬케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영의 몸에서 영은 퓨뉴마를 사용합니다.
정리해보면 푸쉬케는 아직 부활하지 않은 상태의 영을 표현합니다.
그러면 퓨뉴마는 고전15:44절처럼 부활한 몸의 영을 표현한 단어일까요?
히브리서 12장 23절의 영(퓨뉴마)들은 부활한 몸일까요?
* ... <온전하게 된 - 테테레노메논> 의인의 영들과 (히12:23)
'텔레이오스'는 목표에 도달한, 충분히 달성된, 완전한 온전한이란 뜻을 지닙니다.
위의 본문들이 그런 뜻으로 사용하라고 사용된 용어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계시록 20:4절은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 ...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푸쉬케)들과...(계20:4)
아직 이 영혼들은 부활 전입니다.
'살아서'(부활)라는 과정을 남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서 푸쉬케가 부활 이전의 성도들의 영을 표현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퓨뉴마가 부활 이후 성도들의 몸의 상태만을 표현한 유일한 것이라 보기에는 아직 자료가 불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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