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개혁주의 율법론"(신학지남 2016년 여름호 신현우 교수)을 요약한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율법 해석은 몇 가지 특색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율법 이해는 율법 자체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당대의 율법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빙크는 아주 선명하게 지적합니다.
"그는 마태복음 5:38에서 비판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가 구약 성경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이것이 구약에서 인용되었으면 "기록되었으되"라는 문구를 통하여 인용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바빙크는 예수께서 "옛날부터 유대인들의 학교에서 가르치고 해설했던 것처럼 그것을 인용하였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가 너희가 읽었으나'가 아니라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문구로 인용된 것으로 보아
이런한 지적은 타당하다"(p.32).
핑크 역시 같은 견해를 취합니다.
"유대인들은 살인죄는 짓지 말아야 하지만 부노나 원한은 괜찮다고 가르쳤고(마5:2-26), 음욕을 품는 것은
괜찮다고 가르쳤으며(마5:27-30),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괜찮다고 가르쳤다(마5:43-47).
예수의 비판은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비판이며, 구약성경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P.33)
개혁주의 전통은 일관되게 구약 율법과 유대인들의 율법 전통을 명확하게 구분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두 가지에 관한 혼동은 여전히 교회 속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속히 극복되어져야 합니다.
반율법주의
반율법주의자들은 무엇을 주장할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셨으므로 사람이 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뉘우침, 회개, 참회, 용서를 위한 기도, 선한 일들을 행함, 이 모든 것은 불필요하다.
...사람은 단지 믿기만 하면 된다.
반율법주의는 구약의 백성들에게는 율법이 가치가 있었지만, 신약의 백성들의 삶에는 율법이 무용지물이라고 본다.
서철원이 잘 지적한 바와 같이 구약 시대에도 율법은 구원의 길이 아니라 언약 백성들의 생활 법칙이었기에,
반율법주의자들은 신약만이 아니라 구약도 오해한 것이다"(P.35)
반율법주의자들의 뿌리는 어디일까요?
바빙크는 그의 교의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반율법주의는 이미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선포되었던 생각이었는데, 그 후 재세례파, 하템파 등에서 계속 이어져 온 생각이다.
...칼빈은 당시의 율법폐기론자들인 리버틴파를 비판하면서 그 기원이 말시온과 마니교에 있다고 주장했다"(p.34)
신율법주의
신자의 행함을 강조하는 새율법주의(신율법주의)자들마저도 율법이 새로운 법으로 대치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율법폐기론에 빠져 있습니다.
이들 역시 신약시대에 율법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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