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순서 설정을 서정이라 합니다.
구원의 서정이란 용어를 어렵지 않게 듣습니다.
서정은 일종의 순서입니다.
옛날에는 이런 서정을 매우 중시여겼습니다만 최근에는 거의 동시에 일어나기에
순서에 집착하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개혁주의 구원의 서정은 다양하지만 대략 이렇습니다.
※ 소명 → 중생 → 회심 → 신앙 → 칭의 → 수양(양자) → 성화 → 견인 → 영화
구원의 서정의 출발점으로 소명(부르심)으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반응으로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출발합니다.
이것이 개혁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차이점입니다.
1. 부르심(소명, calling)
부르시는 주체는 삼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말씀>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부르심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외적 부르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일부는 복음으로 수용하고 나머지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처음 듣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초청을 받는다는 측면에서 말씀은 양자 모두에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도구가 됩니다.
외적 부르심의 사역을 하는 교회와 목회자, 복음 전하는 자가 매우 소중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중요성을 잘 인식시켜 줍니다.
2) 내적 부르심
복음초청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복음을 받도록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하심은 모두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일어납니다.
이것을 내적 부르심이라 합니다.
2. 중생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사역이 부르심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역사와 내주로 중생이 일어납니다.
말씀이란 외적 부르심이 선포되고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한 부르심으로 화답하여 중생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이
개혁주의의 일반적인 접근입니다.
불신자가 이런 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매우 타당한 접근입니다.
다만 이런 구조가 모든 경우에 적용될까요?
3. 부르심과 중생의 예외 구조
구원의 서정에서 부르심과 중생의 관계를 구약에 적용하면 어찌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언약 백성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언약 백성이며,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의 의(복)에 참여합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에 참여함은 그들의 인지능력과 상관없이 유아일 때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고백하는 <부르심 = 소명 = calling)순서가 생략된 것입니다.
이러한 부르심의 생략(?)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유아 대신 부모가 믿음으로 받았기에 꼭 생략되었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의 가정 역시 이런 패턴을 따라갑니다.
부모와 아이가 한 몸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좀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말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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