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니고데모의 성경이해

오은환 2016. 9. 28. 18:34

니고데모 이야기를 좀 더 확대해서 무엇을 찾아야 할지 보겠습니다.

성경의 중심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 = have seen)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요3:10-11)


1. 너 → 너희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대화하지만 좀 더 넓게 랍비들의 견해를 조목조목 드러냅니다.

랍비들은 마땅히 알았어야 할 진리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너>로 시작했던 호칭은 <너희>로 확대됩니다.


2. <우리>

예수님 역시 혼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호칭을 통해 다수의 견해로 확대합니다.

우리가 누구일까요?

가까이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세례 요한이며, 넓게는 하나님 나라를 외쳤던 구약의 선지자들입니다.


3. 예수님과 하나님의 종들이 보았던 것들

니고데모를 책망하면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그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서 질문한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거듭남이 일어나는 과정에 관한 것들입니다. 


4. 무엇을 보았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외쳤던 자들 즉 예수님과 세례 요한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은 모르고 전하지 않았습니다. 

친히 보았기에 책임감있고 생명력있는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라는 호칭을 통해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언제 일어난 것들을 보았을까요?

<본 것 = have seen>은 현재완료를 사용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어나고 있던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현재까지 일어나고 있지만 영적 어두움이 심해 전혀 보거나 느끼지 못하고 알지도 못합니다. 

비록 니고데모는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은혜는 받았지만 어떻게 받은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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