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왜 할례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싸웠을까요?
조금 더 확대해서 보면 최초의 교회회의로서 '예루살렘 공의회'는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후 50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최초의 교회회의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모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가?
이 문제는 오늘 날도 계속해서 토론되어지는 것으로 가치가 큽니다.
그런데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에 적지 않은 혼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행15:1)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할례가 구원과 직결됨을 알았습니다.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 역시 그것에 대해 반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구원의 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반대했습니다.
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
②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들이 두 가지 다 행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관철하려 합니다.
사도들은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두 가지 다 행할 필요가 없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설득합니다.
대다수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모형과 실체를 이해함에 있어서 혼란이 있었습니다.
실체가 왔을 때 그림자의 역할을 했던 모형은 없어져야 함을 알지 못했습니다(고후3:11).
할례가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한 구속으로 대처 됨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짐승제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성찬)로 대처 됨 역시 주저했습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십자가 이후에도 한참 동안 두 가지를 모두 행한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인 야고보도 이런 유대인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와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행21:20)
바울과 바나바는 할례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보면서 과거의 흔적들을 지우려 했습니다.
너무도 익숙한 것이지만 할례나 무할례 의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무익함을 선포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6)
오직 할례가 가리켰던 그리스도를 믿음이 곧 제대로 된 할례임을 알려줍니다.
* 우리는 그들이(이방인)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행15:11)
특이한 것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 된 표징입니다.
사도들은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다른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음>으로 인정합니다.
*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행15:8)
갈라디아서 역시 이방인들이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했다는 증거를 <성령의 부어주심 - 내주>에서 찾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
할례는 하나님이 약속의 자손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할례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방해합니다.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외적으로 인치는 것이므로 구원과 직결됩니다.
*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롬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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