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성령

뛰어남인가, 우매함인가?

오은환 2017. 2. 23. 13:15

학문은 어떤 전제를 만들어 냅니다.

하나의 전제가 태동되는데는 많은 수고와 시간이 따릅니다.

성경도 그렇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면서 해석의 틀을 만듭니다.

그 틀이 넓고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다면 좋은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수용불가하다면 과감하게 포기해야 합니다.

 

비평신학(역사비평, 문학비평, 종교사비평)을 수용하는 자들은 현대인과 고대인으로 틀을 나눕니다.

고대인들은 현대인들에 비해 열등한 사고 구조를 지녔다고 봅니다.

불트만의 경우 고대인들(구약과 특히 신약 복음서 시대)은 <신화에 사로 잡힌> 사람들로 봅니다.

 

그래서 당대에 통용되었던 신화적인 것들을 성경에서 제거하려 합니다.

그 유명한 <비신화화 신학>입니다.

이런 프레임이 제대로 된 것일까요?

 

성령의 사람 바울은 현대인과 고대인으로 틀을 잡지 않습니다.

반면에 옛 사람과 새 사람으로 구조를 잡습니다.

사실 성경의 기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은 옛 사람이거나 새 사람의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사람 즉 거듭난 사람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옛 사람입니다.

 

수천년 전에 존재했던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같은 사람도 이 틀에 속합니다.

그들이 무지하거나 선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구속함이 있느냐,

또 성령이 그들 가운데 내주하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을 읽고 연구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틀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인과 고대인이란 틀은 아니지만 그와 유사하게 잘못된 접근을 합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의 틀을 보지 못하면 구약 역시 잘못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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