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곳곳에 난해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전체적인 흐름이 달라지기에 매우 신중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서 7장은 성도의 삶에 중요한 틀을 세우기에 바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① 성도들의 삶은 죄와 싸우되 결코 이기지 못하며 신음하는 삶이다 - 영국과 미국 신학자들
② 율법 아래 있던 바울과 유대인들의 고백이며(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을 때) 성도들의 삶과는
무관하다 - 유럽 내륙 신학자들
③ 신앙의 어린 아이였을 때의 상태를 묘사한 것이다 - 존 스토트
존 스토트의 견해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것으로 크게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①과 ②의 견해가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목회자들의 상당수는 ①의 견해를 따릅니다.
현실적으로 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특별히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은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정돈이 필요합니다.
바울이 신음은 정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율법을 알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사모하지만 결코 선한 것이 자신 속에 없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바울의 이런한 고백은 개인적인 상태를 묘사한다고 보다는, 율법 아래 정죄를 받아야만 했던
불신자들의 상태를 묘사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았습니다.
정죄도 없었고, 자유함을 받은 상태입니다.
율법은 이방인들에게 죄가 무엇인지 보게하고 그 안에 가두며(갈3:22), 결국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갈3:24).
율법이 증거하는 의가 되신 예수님이 나타난 곳은 다름아닌 율법 안 입니다(롬3:21).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7장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죄를 완전히 이기지 못한다는 변명에 인용합니다.
성령이 거하는 성도들이 로마서 7장의 곤고한 자라는 고백은 성경 어디에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도들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의 기쁨을 자주 표현합니다.
환경이 어려워도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은 그 자체가 가장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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