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신앙생활을 한 분들도 구약에 대해 문외한(門外漢)이 되기 쉽습니다.
신학자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본질적인 질문 앞에 맨살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구약성도들이 거듭남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어떻게 거듭났으며, 구약은 어떻게 그것을 증거하는가에 대해선 거의 침묵합니다.
사실 이것이 구약이 복음이라는 것을 증거하는데 설교나 강의를 통해 전혀 다루지 못합니다.
중생(거듭남)이나 죄 사함 그리고 성화의 과정을 설교하지 않는다면 본질을 벗어난 가르침이 되고 맙니다.
구약을 교훈으로 만드는 것은 참 쉽습니다.
반대로 구약을 복음으로 만드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우리의 신학적 틀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예수님이 가르쳐준대로 물과 성령으로 일어납니다(요3:3,5).
바울 역시 그렇게 대답합니다(딛3:5,6).
구약 역시 동일하게 일어납니다만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에서 신약과 다릅니다.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모형이나 실체나 모두 동일하다고 봅니다.
구약은 거듭남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1. 마음의 할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 -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외적으로 인친 것(롬4:11) - 은 먼저 마음의 할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로 그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 사함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롬4:1-9).
모든 이스라엘이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만 외적 할례가 유효합니다.
마치 세례처럼 마음의 신앙고백이 따른 후 외적 표징으로 세례가 유효함과 동일한 표본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종종 이스라엘에게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 명령합니다(신30:6, 렘4:4, 6:4, 9:26, 겔44:7,9)
*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16)
바울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만이 참 이스라엘이라 선언합니다.
진실로 이들만이 구원에 이른 남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사람의 손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의미합니다(빌3:3, 골4:11).
*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2:29)
스데반 역시 마음과 귀에 할례 받음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증거로 삼습니다.
성령이 내주하며 순종하는 자들이란 의미입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7:51)
거듭남이 있으려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구속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 결과 성령의 내주하심이 수반됩니다.
이것은 구약의 기본 틀이며, 신약 역시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다만 구약은 모형을 통해, 신약은 실체를 통해 거듭남이 일어납니다.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로 동일합니다.
2. 물과 성령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종종 오해합니다.
십자가 이전의 상황이 구약(옛 언약) 아래서 진행됨을 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구약적 상황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오순절 이후부터 거듭남이 시작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거듭나야 한다는 단어는 '완료 분사로 동사의 현재시제보다 이전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즉 거듭남은 이전 구약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쭉 일어났던 것입니다.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남의 신비를 잘 몰랐것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함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듭남은 성인이 되어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태어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행할 때 일어납니다.
어린 아이의 의지에 따라서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삭개오가 언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또 언제 그는 잃어 버린 양이 되었습니까?(눅19:10)
창녀, 세리들 역시 그렇습니다(눅15:1, 요6:39).
그러므로 우리는 더 깊이 알아야 합니다.
거듭남의 순간은 신앙의 은총을 경험하는 시작이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새 생명으로 태어남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계속 따라가야하는
여정의 틀이라는 것입니다.
지옥 불 가운데 울부짖는 부자 역시 거듭남을 경험했지만 구속의 은총을 거부하고 성령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언약에서 떨어진 자입니다.
거듭남이 없는 신앙생활은 시작도 의미도 없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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