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가 보는 일련의 구원의 서정은 어떤 것일까요?
뚜렷한 질서가 존재하는데 그 순간의 시간은 매우 짧습니다.
쉽게 말하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먼저 동족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인 예수를 믿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방인과 차이가 있을까요?
1. 유대인의 흐름
1) 부르심
베드로는 오순절 이후에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증거합니다.
즉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완악한 자들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구원의 서정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부르심은 말씀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말씀(구속의 복음)이 증거될 때 성령의 역사로 죄인에게 회개가 일어납니다.
2) 회개
구속주를 죽였던 죄악을 회개하는 것은 세례(구속)를 받는 길이 됩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행2:38)
*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행3:19)
*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행4:31)
3) 대속(구속) = 세례 = 할례
이 부분은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언약백성으로서 할례를 통해 이미 구속(대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왜 또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할까요?
구속을 여러 번 받아야 하나요? 그것은 아닙니다.
모형인 할례가 실체인 세례로 드러날 때 모두 그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마치 모형인 동물제사가 실체이신 예수님으로 드러날 때 옛 것은 폐하고 실체를 따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할례나 세례의 근본 의미는 같습니다.
다만 모형과 실체의 차이입니다.
두 가지 모두를 행하는 것은 가증한 것이 됩니다.
그것은 실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행위가 됩니다.
4) 죄 사함
회개의 결과 죄 사함이 일어납니다.
오순절 이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근거로 하여 회개가 일어납니다.
구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동물의 피 흘림을 통해 역시 회개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그 근원은 예수님의 피 흘림 즉 예수의 이름으로 발생했다는 측면에서는 신구약 모두 죄 사함이 기원은 동일합니다.
5) 거듭남
거듭남은 위로부터 태어남이나 다시 태어남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부정한 자가 성도로, 자녀가 아닌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혹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의롭게 되고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이 거듭남입니다.
2. 이방인의 흐름
처음 복음을 접하고 이런 구원의 서정에 출발했던 이방인들은 어떨까요?
아브라함 언약을 따랐던 구약 이스라엘은 아기 때 할례를 통해 구속함을 받고 거듭났기에 이방인들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처음 복음을 받았던 그 시점에서 구원의 서정이 시작됩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역사로 구속에 참여합니다.
그 때 회심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거듭남으로 곧바로 연결됩니다.
이런 과정이 순식간에 멈추지 않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이런 용어들이 동시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용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 너희(이방인)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이나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말씀을 통한 부르심에서 곧바로 거듭남으로 가기도 합니다.
중간단계인 구속이 빠져도 흐름을 연결하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 속에 구속의 중심주제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부르심), 성령의 역사(감화), 회개(회심), 구속, 죄 사함, 거듭남이란 것은 어느 과정이 생략된 채 일어나거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사함이 없는 거듭남이 있을 수 없고, 죄 사함은 있는데 거듭남은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또 구속은 받았는데 거듭났는지는 모른다는 말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체험이나 확신이 없거나 또는 말씀에 대한 지식의 결여로 무지함은 있을 수 있지만
실상은 우리 안에서 믿을 때 모두 일어났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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