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번역을 하는데 있어서 교단간의 양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침례교단은 침례라는 말을 포기하기 어려워서 자신들만의 맞춤형 성경을 사용합니다.
모든 용어가 같은데 세례라는 말 대신에 침례를 사용합니다.
이런 용어의 차이와 그 의미의 미묘한 갈등으로 성경번역 사업이 난항에 처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문제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염려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일까요?
주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세례입니다.
장로교는 머리에 물을 뿌림으로, 침례교는 온 몸을 물속에 담금으로 의식을 행합니다.
장로교는 사도들이 하루에 오천명씩 세례를 주었던 구절을 통해 약식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침례교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물에 몸을 온전히 담금것처럼 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구약성경을 통해 보면 물을 통한 정결의식은 일반적으로 몸을 담금이 맞습니다.
설정을 하거나 유출병을 지닌 자들은 온 몸을 씻었습니다.
몸의 구석구석을 씻는다는 것은 침례적 성격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례나 침례는 참 형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고백하는 것이 원형이며 참 형상입니다.
세례와 침례는 원형(참 형상)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림자를 가지고 싸우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누군가 성찬에 사용되는 떡과 포도주를 어떤 것으로 사용할 것인가로 다툰다면 어떻게 보겠습니까?
정성껏 만들어진 것이라면 어느 것을 사용하든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세례냐 침례냐 하는 것으로 다투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의 질을 가지고 역시 다투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가대나 목회자의 까운을 가지고 다투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것들은 단지 그림자일뿐이니 원형이신 그리스도께 충실함에서 일치를 이루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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