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시록(1-22장)

3 장 일곱 교회 -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오은환 2013. 10. 28. 17:00

 

                              일곱 교회 -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5. 사데 교회(3:1-6)

1) 인사와 책망(1-3)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28:18).

그 권세는 예수 이름을 모든 이름보다 높이셨고,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 앞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한다.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서만,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가게 한다(2:9-11).

 

이러한 일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언급한다.

예수님도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말씀하고 있다(1, 5:6).

성령의 소유(근원)가 모두 성부 하나님이다.

 

현재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아들되신 예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이다.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14:26)

 

하나님의 일곱 영이신 성령을 이제 예수님이 가지고 있음은 그가 이 세상의 일들을 섭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령님을 통해서 특별히 교회와 성도들을 붙잡고 계신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말씀하신다(1:20).

성령님을 통해서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5:23).

또한 예수의 영이신 성령은 교회를 친히 보살피신다(20:28).

성령은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고 그들과 연합하여 다스리신다.

 

성령이 떠나버린 사역자들이나 교우들은 비록 성도의 모양을 갖추고 있을지라도, 실상은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다(19).

그러므로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살전 5:19),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4:30; 63:10).

성령의 연합을 거부하고 다스림을 싫어하는 자들은 약속의 자녀처럼 보이나,

그 약속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다시 언급하면 소아시아 모든 교회들이 이단 영지주의와 맞서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싸우고 있다.

폴리캅의 빌립보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AD 110년경), 영지주의를 버리고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올 것을 권고한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로마나 이집트, 소아시아, 마게도니아까지, 모든 지역이 영지주의의 몸살을 앓고

있었다.

 

사데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된 지역이다.

이러한 환경이 사람들을 쉽게 방탕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앞에 언급되던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사데 교회는 칭찬이 아닌 책망으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죽게 만들었던 것들을 제거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오셨다.

사도들 역시 이런 사명을 잘 알았고,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교회들을 다시 회복시키려고 애썼다.

-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

  내가 이에 대하여 지나치게 자랑하여도 부끄럽지 아니하리라(고후 10:8)

 

  (1) 행위의 온전한 것(2)  

사데 교회가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은 바로 행위가 온전하지 않음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온전하지 않은 행위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동기가 결여된 행위나 믿음이 수반되지 않는 행위로 해석해 왔었다.

 

그러나 본문 전체를 통해 살펴 볼 때 이런 해석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을 더럽힌 자들이다(4).

지금까지 흰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옷이 더럽혀졌다. 이들은 흰 옷을 입기에 합당하지 않다.

더 심각하게 말하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들이며(5), 이들은 결코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한다(5).

 

그대로 있으면 재림을 준비하지도 못하고, 도둑 같이 오실 예수님 앞에 애곡하며, 심판 받는 무리들이

될 것을 경고한다(3).

성도라면 주님의 재림이 도둑같이 임할 수 없다.

   -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더 큰 문제는 아직도 자신을 성도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라는 말씀은, 교회 공동체 안에 있기 때문에 자신을

여전히 성도라고 상상하는 자들을 빗대어 한 말이다. 바울 사도도 동일한 말씀을 하였다.

   -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딤전 5:15)

 

  (2) 옷을 더럽힌 자(4)

사데 교회의 일부가 옷을 더럽혔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들이 무엇을 행했기에 그 옷이 더럽혀졌는가?

구체적인 언급은 없으나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들에게서 나타난 니골라 당의 악한 교훈 즉 다른

복음에 오염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광범위하게 퍼진 영지주의 사상이 교회를 크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같은 내용을 이야기 할 때 종종 앞에 언급된 단어들을 생략하고 전달한다.

너무 잘 알려진 내용이라면 그것을 나열하지 않고,곧바로 결론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바울 사도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는 다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행위에 대한 단어를 주목하자.

에베소 교회의 처음 사랑을 잃은 자들을 책망하는데, 첫 사랑은 곧 처음 행위이다(2:5).

에베소 교회에서 니골라 당의 교훈에 빠져 첫 사랑을 상실한 자들은 곧 처음 행위를 잃어버린 자들이다.

사데 교회 역시 처음 행위(사랑)를 상실한 자들을 향해 동일하게 이 말씀을 하고 있다.

 

성경은 옷을 더럽힌 것에 대해 종종 언급하고 있다.

음녀가 음행으로 땅을 더럽혔으며(19:2), 이들은 영적으로 어두운 자들이며(6:23), 두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다(6:23).

거짓 선생들에게 미혹된 자들로서 굳세지 못한 영혼들이며,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자들이다(벧후 2:1,14,21).

 

반면에 성도들은 참 진리 가운데서 생각하고 살아가기에 옳은 행실이 가능하다.

성도가 흰 옷을 입는 이유는 바른 행실의 대가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는 적그리스도나 음녀에게 굴복하지 않는 성도들을 언급한다.

  -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19:8)

 

결론적으로 사데 교회의 온전하지 않은 행위는 단순히 동기가 결여된 행동이나, 믿음이 조금 결핍된

형식적인 행위라는 차원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들의 행위는 신앙의 근본적인 진리를 부인하고, 그 결과 예수님만 주인으로 섬기는

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에베소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와 같은 형태의 위험수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행위를 회개하지 않을 때, 예외 없이 흰 옷을 입지 못하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형벌을

받는다.

 

  (3) 회개를 통한 회복 촉구(3)

예수님은 교회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복음 초청을 받고 교회에 모인 사람들이 여러 원인들로 복음에서 떠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사도들은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권면한다.

교회의 여러 문제들은 복음 안에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사데 교회 역시 에베소 교회와 같은 방법을 주셨다.

복음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는 것이다.

즉 회개의 기준은 복음이다. 복음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기준이 될 수 없다.

성도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지체 없이 복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살피는 것이 지혜이다.

 

 2) 칭찬과 위로(4)

칭찬과 위로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힘을 부어주며, 악한 교훈에 미혹된 자들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1-3절만 보면 사데 교회 모든 성도들이 다 죽은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오염되지 않은 '소수(올리고스,  a few)'의 성도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4).

 

이들은 흰 옷을 입기에 합당한 자들이다.

이 사람들은 여자(음녀)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들이다.

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 언제나 순종하는 자들이다(14:4).

 

 3)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5)

이기는 자가 받는 상급은 주님의 재림 때에 시작되며, 백보좌 심판 때에 각 개인에게 구체적으로

주어진다예수님의 여러 비유들은 이러한 상급에 대해 잘 언급하고 있다.

사데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진 상급은 흰 옷을 입으며,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들이다.

이들 상급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

 

  (1) 흰 옷

흰 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다닌다는 말은(4), 재림 후 새 하늘과 새 땅 또 그곳에 내려온 새 예루살렘

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복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과 천년동안 왕 노릇 하는 모든 복을 가리킨다.

즉 재림 후 주어지는 모든 복을 누리는 권세가 흰 옷 입은 자들에게 주어진다.

계시록은 흰 옷 입은 자들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

 

보좌 앞의 순교자들에게 흰 옷이 주어지며(6:11), 큰 환난에서 나오는 수많은 무리들이 흰 옷을 입고

찬양한다(7:9-17).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 자들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받는다(19:7-8).

천사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재림하시는 주님을 따른다(19:14).

혼인잔치의 참여는 오직 흰 옷을 입은 자들에게만 허락된다.

-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22:12,13)

 

  (2) 생명책

생명책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 다니엘서에 잘 나타난다. 심판대 앞에 책들이 펴져 있다(7:10).

백보좌 앞의 심판 역시 생명책과 행위의 책들이 놓여 있다(20:12).

예수님도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했다(10:20).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

 

목할 것은 생명책이 어떤 책인가 하는 것이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13:8).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은 자신의 의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가능함을

알려준다.

 

흰 옷을 더럽혔다는 표현이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울 것이라는 경고는 복음을 통해서 거룩함을

알았던 자들이 다시 부패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언급은 성령을 훼방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형태이다.

 

편지 서두의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 이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성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예수의 영인 성령과의 연합이다.

성령의 통치를 거부한 자들은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4:30).

우리는 재림하는 구속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이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소멸시킨 자들은,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6:4-6, 10:29, 12:16-17,

벧후 2:20-22).

 

복음을 받은 자들은 성령의 임재가 가장 큰 복이다(7:10, 11:13).

그러나 복음을 받고 난 후 성령을 거부한 자들은 오히려 엄청난 진노를 쌓는다는 것을 알고 그 책임을

두렵게 여겨야 한다.

-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12:47-48)

 

6. 빌라델비아 교회(3:7-13)

 1) 인사와 칭찬(7-11)

예수님이 가진 권세는 종종 열쇠라는 상징으로 묘사된다.

다윗의 열쇠를 가진 자는 천국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세가 있다.

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가 바로 자신이며,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열린 문을 현재적 권세로 주셨다.

예수님이 주신 권세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열린 문)는 열매 맺는 백성에게 주어진다.

 -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21:43)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사망과 음부의 열쇠까지도 가지고 계신다(1:18).

그 권세를 성도들에게 위임하셨다.

도들은 마귀와 귀신을 예수의 이름이라는 열쇠로 묶을 수 있다(16:18).

이런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16:19)

 

(1) 작은 능력으로 신앙을 지킴

빌라델비아 교회는 유대인들의 심한 박해를 받았음에도 처음 사랑을 끝까지 간직한 것에 칭찬을 받았다.

잘못된 선민사상이 빚어낸 핍박은, 소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들이 거주하는 모든 도시에서

발생했다빌라델비아 교회는 외형적으로 매우 초라했기에 칭찬이 더욱더 값지게 느껴진다.

 

(2) 유대인들을 돌아오게 하는 역할(9)

유대인들이 사탄의 도구가 되어 교회를 박해하고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 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교회들이 유대인들로 인하여 많은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살전 2:15-16). 서머나 교회와(2:9) 많은 도시들이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이런 유대인들이 교회 앞에 절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곳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날까?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속경륜 속에서 일어나는데 종말론적 상황을 나타낸다.

 

바울 사도는 이런 구속경륜을 잘 이해하는 것이 복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말했다

(9-11).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불만은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대적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이 주인이기에 그의 선하심을 악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유대인들이 저질렀던 실수를 반복하는

결과를 초래한다(20:15).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당부한다.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이해하며 즐거워하라고 거듭 부탁한다.

-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15:10)

-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15:11)

 

(3) 시험의 때에 보호받는 교회(10)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함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9절 물음에 대한 답변이 바로 10절이다.

온 세상에 임하는 시험의 때에 교회가 철저하게 보호받는 것을 보며 알게 된다.

하나님은 진노의 심판 재앙을 내리실 때, 교회를 철저하게 보호 하신다.

그 재앙의 대상은 오직 땅에 거하는 자들이다(10).

 

여기서 중요한 것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 대한 이해이다.

이 용어는 계시록에서 자주 쓰이는 관용어로서, 성도를 제외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계시록에서 약 20 여회 정도 사용되었다(1:7, 3:10, 6:10, 6:15, 7:2, 9:4, 10:11, 11:9, 10, 11:18,

12:12, 13:6, 7, 8, 12, 14, 14:6, 17:2, 8, 18:20, 19:19, 20:7, 8).

 

진노의 심판 재앙은 오직 악인들에게만 내려진다.

온 세상을 재앙들로 심판하는 그 때에,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인치심이 있다(7:1-8).

하나님의 심판 재앙의 특징은 그것이 초자연적인 것이며, 성도와 악인을 구별하는 것으로, 누구나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식하게 해 준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성도를 휴거시키거나, 이 땅의 어느 안전한 지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악인들의 눈앞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것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다.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5) 

 

(4) 선한 싸움에 대한 격려(11)

어떤 이들은 성도가 환난 전에 휴거한다는 근거로 앞의 10절을 자주 사용한다.

환난 전에 휴거한다는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사상이다.

예수님은 환난 후에 오시며(24:29, 30, 13:24-26), 그 때 성도들의 공중으로 들림 받음이

일어난다.

 

11절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성도에게 치열한 싸움이 있을 것을 언급한다.

어떤 공격에도 성도는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야 한다.

싸움이 강렬할수록 하나님은 성도를 더욱 굳게 붙들어 주기에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2)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12)

(1) 성전의 기둥 삼음

지진이 자주 일어났던 이 지역에서,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은 깊은 의미가 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어 결코 다시 나가는 일이 없다.

이것이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복이다.

세상의 어떤 재난이나 험한 풍파가, 하나님과 성도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음을 지역적인 특징을

통해서 나타낸다(8:38, 39).

 

(2) 새 이름을 주심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 성, 그리고 예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해 주신다.

영적 전투를 마친 십사만 사천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 있다(14:1).

이름을 써 주심은 하나님의 소유, 즉 하나님의 자녀됨을 인증한다.

 

새 예루살렘 성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도성이다(13:14).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의 장막이며(21:3),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이며(고후 5:2), 하늘에

있는 본향이다(11:16).

이러한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온다(3:12, 21:2, 10).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성부께서 이 땅과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21:5).

새롭게 된 이 땅 위에 하늘로부터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온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한다(21:3).

 

성도들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는 것이다(22:4).

아무리 좋은 환경과 풍성한 것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 그 행복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다.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10)

 

3) 책망 없이 칭찬만 받은 두 교회의 상황이 서로 다른 이유는?

칭찬만 받은 두 교회에게 임하는 종말적인 상황이 크게 다르게 보인다.

서머나 교회는 10일 동안 환란을 당하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의 때를

면하여 준다. 왜 상반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이것은 모순된 상황이 아니다.

종말론적 상황에서 교회에 일어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에, 성도들이 재앙에서

철저하게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

신실한 성도들은 이러한 심판 재앙들로부터 철저하게(144) 보호된다.

-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8:22-23)

-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21:18)

  

그러나 사탄은 사람들을 통하여 -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음녀 - 신실한 교회 즉 성도들을

핍박한다그 핍박을 옥에 던져 넣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 역시 이러한 사탄의 핍박이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자신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굳게 잡아야 하는 치열한 싸움이 존재한다(11).

 

결국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모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재앙 가운데서 철저히 보호받은

반면에사탄의 엄청난 핍박은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 동일한 환경임을 알 수 있다.

-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21:19)

 

7. 라오디게아 교회

 1) 인사와 책망(14-17)

서두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 땅에서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한 모습이다.

아무런 저항 없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모습이다(53:7).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이 드러냈던 것은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의 모습이다.

이 모습을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요구하신다.

성도들은 맏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신앙으로 인하여 책망을 듣는다.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부요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만족의

늪에 빠졌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된 근원적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여섯 교회들을 통해서, 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영지주의 사상에 깊이 물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당대의 모든 지역이 영지주의의 커다란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2) 권면(18-20)

성도의 자기만족은 복음의 목적을 알지 못함에서 초래한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아니한다(14:17).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통치 속에서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다.

우리의 부요함은 눈에 보이는 금이 아니라, 불로 연단한 금(18)이다.

즉 용광로를 통해 불순물이 제거된 금처럼,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아 순결해지는 것이 부요함이다.

 

또한 성도들의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옳은 행실은 거룩한 옷을 입게 한다(19:7-8).

이러한 삶의 행실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서 부끄러움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벧후 3:14, 16:15).

라오디게아에서 생산되는 좋은 안약을 사서 신체의 눈을 치료하듯이, 영적인 어두움을 극복하라

권하신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이다(19).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하며 징계한다.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12:8)

 

성령의 조명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면 성도의 삶이 흐려지며, 그 결과 열정이 식어진다.

교회는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의 교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교제 없이 교회는 의의 열매들을 결코 맺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제의 문을 두드리려, 그 문이 열려지기를 원하신다.

 

부드러움과 엄중한 모습을 겸하여 권면한다.

현재적인 교제의 참여는 종말론적 참여에 대한 보증이 된다.

이 깊고 인격적인 교제에 참여치 않는 자는 어찌되는가?

그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심판의 대상이 된다.

-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5:9)

 

3)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21)

예수님이 이기시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처럼, 이기는 자는 예수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신다보좌에 앉는 것은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권세를 누린다는 의미이다.

이는 이기는 자들이 보좌에 앉는 것과 같다(계20:4).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20:6).

결국 이기는 자가 받는 상급은,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과 영원토록 왕 노릇 하는 것이다.

 

8. 각 교회들에게 명한 회개에 대하여

예수님은 교회들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어지는 대가가, 각각의 교회마다 다른 표현들로 나타난다.

 

에베소 교회는 촛대를 옮기고(2:5), 버가모 교회는 내 입의 검으로 싸우겠다고 했으며(2:16),

두아디라 교회는 침상에 던지고, 큰 환란에 던지며, 사망으로 그 자녀들을 죽일 것이다(2:22-23),

사데 교회는 도둑같이 임하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판주가 문 앞에 와 있음으로 경고하고 있다.

 

회개하지 않을 때 주어지는 결과는 참혹하다.

이긴 자가 받는 상급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자들이 되어 불 못에 던져지는 존재가 된다.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13:3, 5)

    - 두 번 강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교회는 공동체인 동시에 각각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데나 두아디라 교회처럼 다수가 잘못된 길을 갈지라도, 믿음을 지키는 소수의 무리들이 존재한다.

믿음을 지킨 자들은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흰 옷을 입을 자격을 주신다.

 

예수님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거룩하고 순종하는 교회가 되길 원한.

여기서 우리는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로만 해석해서 모두 나쁜 교회나, 혹은 모두 좋은 교회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교회에서 개인의 신앙만을 강조하는 것도 공동체를 통한 유익을 배제하기 쉽다.

교회 공동체와 각 개인의 신앙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까지 자라야 한다.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4:13)

 

9. 각 교회들의 이기는 자들이 받는 상급

1) 혼인잔치에 참여

흰 돌을 받는 것이나 흰 옷을 입는 것, 감추어진 만나를 먹는 것은, 모두 어린 양의 신부로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복을 의미한다.

 

 2)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스림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거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는, 모두 성도의 특권이다.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왕 노릇 하는 권세를 나타낸다.

 

3) 새 예루살렘 성에서 누리는 복

생명나무의 과실은 새 예루살렘 성에 존재한다. 에덴동산에서 죄로 인해 상실되었던 생명나무 열매는,

예수 안에서 영화롭게 된 성도들에게 주어진다.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의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며,

영생을 누리게 되는 복을 받는다.

 

 4) 재림 이후 상황 이해

선물들은 현재 이 땅에서 받을 복들이 아니다. 종말론적 접근으로 해석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완성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결국 재림 때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 성도들은, 그 혼인잔치의 기쁨을 새 하늘과 새 땅, 하늘에서

내려 온 새 예루살렘 성에서 누린다.

 

특별히 사탄이 천년동안 옥에 갇혀 있고, 만국의 미혹이 없는 천년 동안 혼인 잔치가 열린다.

흔히 말하는 천년왕국은 새 하늘과 새 땅 이전의 또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탄이

결박된 동안,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영원하지만 천년이라는 기간을 정한 것은 사탄의 심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재림 후 성도들의 왕 노릇 하는 형태는 사탄의 심판과 상관없이 영원하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시간적인 구분이 우리 성도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사탄과 그 추종자인 악한 천사들과 그리고 살아서 형벌 아래에 있는 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10. 재림 때에 각각 구별 된 세 부류의 사람들

  예수께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무리들은 특별히 교회 내의 사람들이다.

  교회는 복음의 초청을 받고 모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 안에 있지만 여전히 사탄의 박해가 기다리고 있다.

  환란이나 유혹, 여러 가지 미혹을 통해서 사탄은 복음 초청을 받은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한다.

 

1) 의인(경건한 자) - 인내로 구원에 이르는 자로서 이기는 자(고전 4:5)

   -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8:15)

 

2) 경건하지 아니한 자

교회 내의 성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음녀에게 미혹된 자나 진리에서 떠난 자, 짐승의 표를 받고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로 신앙의

실패자들이다.

   -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살후 1:8)

 3) 죄인(악인)

  처음부터 뚜렷하게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다.

  이들은 종말에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아, 신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선다(벧전 4:17).

   -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 4:18)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진리 1 - < 영지주의 이단 >

 

 

1. 정의

  영지주의란 신비한 지식을 추구하여, 자신들이 만든 하나님께 나아감을 추구하는 자들을 일컫는다.

  신비한 지식이란, 성경(신구약 중 필요한 부분을 약간 사용), 의식(성경, 이방종교, 철학), 내적 합일

  (상승), 하나님(일자, 타자, 알 수 없는 분, 구약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으로부터 온 구원자(하강)

  등을 의미한다.

 

2. 기원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으나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철학과 종교로 본다.

  이들이 기독교 전파와 맞물려 교회 공동체 내에 들어왔으나, 자신들이 가진 이전의 영지를 기준으로

  성경을 해석함으로서, 기독교를 전혀 다른 영지주의 종교로 만들었다.

  이들의 사상이 이집트와 유대, 시리아, 소아시아, 마게도니아, 로마에까지 쉽게 또 순식간에 퍼진

  것은, 이방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과 유사한데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유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신성을 배제하고 오직 인성만을 강조했다.

  그들에게 예수는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훌륭한 선지자였다.

  선지자를 넘어서서 신의 아들은 아니라는 견해이다.

  반면 이방 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 인성을 배제하고, 오직 신성만 강조하여 예수의 구속사역을

   부인하여, 도세티즘(가현설)에 빠지게했다.

 

3. 교리

  영지주의자들의 지도자에 따라 각각의 강조점이 다르고, 계속해서 새롭게 변신해왔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 교리들은 대체로 일치한다.

  ① 땅과 하늘, 온 우주를 창조하신 분은 구약의 하나님이다. 하지만 구약의 하나님은 최고의 신이

    아니라, 물질계를 만든 열등한 하나님이다.

   오직 최고의 신은 일자, 타자, 숨겨진 하나님, 알 수 없는 하나님이다.

   이러한 둘 이상의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은, 이들의 종교가 신정론에서 출발했기에

    가능했다. 만일 구약의 하나님이 선하고 최고의 하나님이라면, 이 세상에 죄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러한 전제아래서 그 답변으로서 영지주의는 태동되었다.

 

   결국 이 세상의 죄와 모순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세상을 만든 하나님

   (구약성경의  하나님)이 그 자신의 무지나 무능함으로, 결함이 있는 창조를 하였기에 그렇다는

    주장이다.

 

  ② 영지주의의 신의 계보는 최고의 하나님과 나머지 수많은 하나님(애온들 최고신의 유출된 상태)

      존재하게 만들었다. 각각의 영지주의 지도자에 따라 최고의 하나님과, 그로부터 유출된 나머지

    (30, 365)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③ 우주를 창조한 구약성경의 하나님(조물주 데미우르게), 자신의 열등함을 감추기 위해 아담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했고, 악과를 먹지 못하게 함으로서,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하나님께 순종했던 아담은 무지한 자가 되며, 하와와 뱀은 지혜자로서 아담을

     조물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선한 자로 둔갑한다.

 

  ④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 순종했던 족장들이나 왕들을, 열등한 신의 두려움 가운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복종한 수준 낮은 자로 본다.

   노아의 홍수 때에 죽은 많은 사람들,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멸망 받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라, 창조주(조물주)무지함을 알고 대항해서 죽었다는 해괴한 주장을 한다.

 

   그러므로 이들 영지주의 자들은 구약성경을 신약보다 열등한 작품으로 보며, 구약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것이 참다운 영지(신비한 지식)를 가진 자의 자세라고 부추긴다.

   리하여 이들은 창조의 순리를 따르지 않기 위해 금욕을 하든지, 아니면 방종을 하여서 창조주에게

    모욕감을 주려한다.

 

  ⑤ 우주를 만든 조물주와 천사들은 인간을 최고의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려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은 열등한 조물주를 벗어나,  최고의 하나님께 나아갈 것인가 질문한다.

    여기서 그들의 신비한 지식과 구원에 대한 교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그들이 생각해 낸 공교한 작품들이다.

    권위도 없고, 각각의 주장에 따라, 수많은 이론들을 쏟아냈다.

 

  ➅ 인간의 외면(육체)은 열등한 조물주를 닮았지만, 내면은(영혼) 신성한 불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을 세 부류로 나눈다.

   영적인간은 신비한 지식을 가진 자로 구원에 이르고, 혼적인간은 신비한 지식을 깨달았을 때

     역시 구원에 이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윤회를 반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육적 인간은, 영혼이 육체의 감옥 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무감각으로 인하여,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구원은 꼭 죽어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서 영지를 통해 깨달은 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깨닫는 자가 곧 그리스도가 된다. 도마복음에서 도마는 자신을 예수님의 쌍둥이

     형제라고 했다.

   즉 진리를 깨달았기에 단순히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체가 된 것이다.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

 

  ⑦ 인간의 구원은 십자가의 대속이 아닌, 예수가 전한 신적 지식을 알게 됨으로(깨달음) 구원(해탈)

     성취된다고 보았다.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고 죽음을 믿지도 않았다.

   구레네 시몬이 대신 죽었다든지, 십자가에 달리기 전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에게서 떠났다든지 하는,

     터무니없는 주장들을 한다.

   이들에게는 순교가 불필요했고, 신앙 때문에 죽어가는 순교자들을 비방했다.

   부활 역시 그렇다. ‘영지를 소유한 자는 곧 부활한 자라고 말한다(딤후2:18).

 

  ⑧ 인간 안에 깊이 잠재한 신적 본질에 대한 깨달음은, 영지 즉 구원의 지식을 통해 얻어지는데,

     여기에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인간 내적에서 출발된 지식이며, 다른 또 하나는 최고의 신으로부터 오는 구원자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위로부터 오는 최고의 구원자로 예수를 지목한다.

   그러나 꼭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자는 아니다.

   하와, (사탄), , 마니, 심지어 부처까지도 무지한 인간을 깨우는 역할을 하는 선각자로 인식한다.

   이러한 주장의 종착역은 종교 다원주의다.

 

  ⑨ 구원을 대속이 아닌 지식으로 알기에, 이들의 삶은 새롭게 변화할 필요가 없다. 오직 신비한

     지식만이 필요한 것이다.

 

  ⑩ 예수는 교사로서 영지를 가르쳐 주었고, 또한 신비한 의식을 전해 주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구약의

     하나님이 아닌 최고의 하나님(알 수 없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신 분으로 여긴다.

 

  ⑪ 결국 구약의 하나님은 예수님의 아버지가 아니며, 예수님의 아버지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복음을,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이라

      불렀다(고후11:4).

 

  ⑫ 영지주의자들은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질은 악하고 영혼은 선하다는 잘못된

      세계관을 가졌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었고, 오직 인간의

      불순종을 통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런 잘못된 주장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4. 신약성경 속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자들

가장 크게 다루는 곳은 요한일서이다. 영지주의의 가현설이 잘못되었음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를 괴롭히던 세력들도, 모두 영지주의자들이다.

고린도 교회의 분파들, 에베소서, 골로새서에 나타난 이단들, 에베소 교회를 양육하던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들, 베드로 서신들은 모두 영지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영지주의의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 잡기 위해 복음서의 기록을 재촉했다는 견해 역시 수긍할만하다.

 

사탄의 교훈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 영지주의 교훈을 사탄의 깊은 것’(2:24)

   이라 했다

우상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를 우상이라 했고, ‘우상을 멀리하라고 경고한다(요일5:21)

사도바울

   ☻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딤전5:15), 복음을 버리고 영지주의 교훈으로 돌아간 자들을 언급한다

   ☻ 마귀의 올무(딤후2:26)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진리 2

 

땅에 속한 자하늘에 속한 자” - 계시록에 나오는 관용어

 

   ①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②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3:10)

   ③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느 때까지 하시려하나이까 하니(6:10)

   ④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6:15)

   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7:2)

   ⑥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8:13)

    -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9:4)

   ⑦ 그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0:11)

   - “땅과 바다를 밟고, 그 손에 작은 책을 들고 서 있는 천사(10:2, 5, 8) = 3번이나 나오는 것에 유의

   ⑧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11:9, 10)

   ⑨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11:18)

   ⑩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12:12)

   ⑪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하늘에 사는 자들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13:6,7)

   ⑫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 다 그

      짐승에게 경배 하리라(13:8)

   ⑬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13:12)

   ⑭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13:14)

   ⑮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

       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14:6)

   ⑯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17:2)

   ⑰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17:8)

   ⑱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18:20)

   ⑲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19:19)

   ⑳ 천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20: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