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 핵심은 <하나님 나라>를 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혼동스럽게 하는 것은 비밀을 드러내는지, 숨기는지 애매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모든 천국(하나님 나라) 비유중 가장 먼저 드러낸 것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며, 모든 비유의 근본(막4:13)으로 취급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13:11-12) |
<마가복음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막4:11-12) |
<누가복음에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눅8:10) |
1.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렸던 청중들에게 알져진 비밀은 무엇일까요?
청중들이 다 알고 있었다면 그것은 비밀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청중들이 잘 못 알고 있거나 오해했던 것들을 밝히 드러내 주십니다.
1) 사탄이 왕성한 활동을 하며, 구원을 얻지 못하게 방해한다
유대인들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는 한 마디로 메시아가 왕으로서 악한 자들을 섬멸하고, 의인들을 통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볼 때 재림하셔서 통치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이런 나라를 꿈꾸었을까요? 간단합니다. 구약성경의 대부분이 그런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심지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게 들어가지 못하고(길 가, 돌 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 유업을
받지못한다 선언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2) 성령을 따라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
앞 부분과 똑 같이 이 부분도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율법을 지켜 살아온 자들이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구약성경을 오해하며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21:43)
유대인들이 받은 충격은 그 기다림만큼이나 컸습니다.
그들이 꿈꾸던 메시아가 아니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심지어 세례 요한까지도 그의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이 진짜 오실 메시아인지 확인시켰습니다(마11:3).
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려는가, 숨기려는가?
많은 신학자들이 이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일정 시간동안 숨기려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전체적으로 볼 때 숨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때때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보내심으로 인한 모든 사역이 완성될 때까지
분란이 일어날까봐 드러내지 않은 측면은 있습니다.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이유를 살펴보면 그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1) 마태복음
마태는 하나님 나라를 알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더 주시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주신 것도 빼앗기 위함
이라고 말합니다(마13:12 - 위 첫 번째 박스 참고).
더 나아가서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빼앗긴 이유가 13:15절에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 숨기신 것이 아니라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 이 백성들이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5)
부연설명하면, 하나님 나라를 통해 임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묘사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행복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따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복음을 알게 됨으로 인한 커다란 희생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두려워합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았습니다.
*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왕상18:21)
부자청년 역시 그렇습니다.
*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눅18:23)
부자든 가난한 자든, 많이 배운자든, 건강한 자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삶은 자신을 위한 것들을
철저하게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통치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법은 이 세상의 법과 충돌합니다.
여기에 큰 고민이 생깁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2) 마가복음
간단하게 마가는 그 이유를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묘사합니다(막4:12).
마태복음과 연관해서 보면, 마태가 기록한 <돌이켜>와 마가의 죄사함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마태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사도행전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서 먼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으로 인한 복음을 전합니다.
유대인들은 서로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모임은 깨졌습니다(행28:24-25).
바울은 그런 유대인들을 향해 똑 같은 구절로 응답합니다.
★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행28:27)
하나님 나라가 임함으로 인한 고침받음의 결과에 대해 유대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나라의 삶이 얼마나 큰 희생이 따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삶을 포기하고자 의도적으로 고침을 받지 않으려 했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나 바울, 마태, 마가, 누가가 인용한 이사야 6:9-10절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를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자들을 향해
모든 책임이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경고입니다.
※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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