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나라

<동행>으로 본 하나님 나라

오은환 2013. 11. 24. 15:22

 

하나님 나라가 성경의 중심주제라는 것을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합니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그 백성들을 다스린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구약에 하나님 나라가 없었다라고 하는 것은 핵심을 잃어버린 공허한 외침입니다.

 

1. 하나님은 구약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이었다라고 선언합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핵심적인 언급입니다.

 

 ★ (맹세하지 말라)...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마5:35)

 ★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우리 하나님의 성, 거룩한 산에서 극진히 찬양 받으시리로다,

     터가 높고 아름다워 온 세계가 즐거워함이여, <큰 왕의 성> 곧 북방에 있는 시온 산이

     그러하도다(시48:1-2)

 

2. 성령으로 다스리십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약 백성들을 다스렸을까요?

성령을 통해 다스렸습니다.

구약에 숱하게 많이 나오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라는 표현은 성령께서 함께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3. 동행의 의미속에 담겨진 성령과의 연합 및 통치

에녹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은 짧게 4 구절로 한정합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에 대해서는 매우 긴 장을 할애합니다.

 

  에 녹 노 아 아브라함
동 행 O (5:22,24) O (6:9) O (12:4)
의 인 없음 O (6:9) O (15:6)
완 전 없음 O (6:9) O (17:1)
은 혜 없음 O (6:8) O (18:3,24:14)
믿 음 없음 없음 O (15:6)
성 령 없음 O (6:3) O (24:7,27,40)
말 씀 없음 O (8:20)정결법 O (26:5)명령, 계명, 율례, 법도

 

성경의 기록으로는 <없음>이란 것이 존재하지만, 계시의 점진성을 인정한다면 다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수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에 녹 노 아 아브라함
동 행 O O O
의 인 O O O
완 전 O O O
은 혜 O O O
믿 음 O O O
성 령 O O O
말 씀 O O O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의미 속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으며(히11:5), 이것을 에녹의

의로 인쳐 주었고, 에녹은 그의 조상인 아벨처럼 말씀을 따라 제사를 드렸으며(창4:4), 성령의 인도

하심을 따라 동행했고, 결국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완전한 삶을 살아갔던

자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

    느니라, 그는 옮겨지지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11:5)

 

  노아 역시 믿음에 관한 단어는 없지만(창6-10장),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어찌 기쁘게 하겠습니까?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히11:7)

 

4.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과 하나님의 나라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성령을 따라 순종한 자들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성령을 거역하기도해서 심판을 자초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성령을 통해서 구약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는 하나님의 통치에 불순종한 자들을 이렇게 정죄합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도다>(행7:51)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던 믿음의 선진들과는 달리 성령을 거스리는 자들이 또한 존재

했음을 다시 깨워주며, 모두가 성령의 다스리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스데반 집사는 간곡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 나라를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는 성경해석의 큰 틀을 어떻게 형성하느냐로 귀결됩니다.

성령이 없다는 가정 아래서 구약을 해석하면 그처럼 어려운 해석이 없습니다.

성령 대신 다른 것으로 그곳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해석 자체도 터무니 없는 것이 되며, 결국 무가치한 산물이 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