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닮고 싶은 것을 버려라

오은환 2013. 11. 21. 13:46

 

목회자로서 이런저런 설교들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하는 설교가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글을 흉내내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과학도 500년전과 현대를 비교한다는 것이 어처구니 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상하게도 성경연구는 현대가 과거에 종속된 느낌입니다.

이것 참 이상하지요?

 

구약성경을 설교하면 항상 동일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닮아가자는 것과

악인들을 닮지 말라는 이야기로 정리됩니다.

 

아브라함을 본받자

모세를 본받자

다윗을 본받자

 

본받자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처럼 의롭게 행하자, 승리하자, 하나님께 매달리자는 것 등입니다.

항상 나와 믿음의 선진들을 <비교하는 학습법>입니다.

 

이 정도의 설교는 참 좋은 설교의 모형이 아닙니다.

성경이 의도한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며,

결국 버려야 할 <설 익은 설교>입니다.

 

구약을 읽고 또 읽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신구약의 구원의 형태가 다르게 보고 있는 개혁주의 모습에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불분명한 진리가 확고한 진리인양 탈바꿈 된 모습에

점점 더 탈진되어 갑니다. 

 

이 모든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구약에서 성령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의 선진들에게 늘 성령이 함께 했습니다.

오늘날 신약시대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보고 난 후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설교가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처럼 성령을 따라 살아가자 "

이것입니다.

 

"사울왕, 고라, 다단, 출애굽의 불순종한 자들처럼

 성령을 거역하지 말라"(사63:10, 행7:51)

  이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오늘날 신약성도들 처럼 성령의 열매를 맺었고,

예수님은 이런 열매 맺는 자들만이 참으로 성령을 따라 살았다는

증표로 삼아 주었습니다.

 

신앙은 죽어버리거나 잠자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나, 어느 곳이나, 어떤 환경이나

성령과 함께 살아감으로 늘 역동성이 있습니다.

항상 행복합니다.

 

제 블로그 <신구약 성령론>을 참고하시면

성경에 대한 눈이 확 뜨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