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원론

[스크랩] 거듭난 자도 실족할 수 있는가?

오은환 2013. 10. 12. 20:08

이 주제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 봅니다.

 

우리는 거듭남이 매우 어렵다는 관념을 버렸으면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그것을 우리들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하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동시에 거듭남이 일어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에,

또 말씀이 읽혀지는 곳에,

성경을 공부하는 곳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거듭남은 일어납니다.

 

거듭남을 통해서 새 생명이 탄생되었습니다.

<의로워진 죄인>이란 이런 불분명한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흐릿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의로워진 죄인이란 말을 조금 더 리얼하게 묘사하면

무늬만 의인이란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의 외적 증거들에 대해 성경은 여러 가지로 나열합니다.

 * 회심 - 육신을 쫓았던 삶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섬

 * 회개 -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애통과 회복 

 * 믿음 - 성령의 선물로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인적인 신뢰

 

이런 거듭남의 외적 증거들은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그 결과 성령의 내주함으로만 일어납니다.

 *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우리가 다루어야 할 더 깊은 문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다시 실족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타락하여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은 실족되거나 세상으로 돌아간 자들은 거듭나지 않았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접근이 매우 어렵습니다.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이야기 하면 끝없는 논쟁으로 결론을 맺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안에서만 찾아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입니다.   

 

1. 사탄은 성도들을 어떻게 하려 하는가?

 

  예수님은 사탄이 성도들을 어디까지 공격하는지 이야기 합니다.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 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24:24)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성도들에 대한 사탄, 마귀, 악한자라 표현된 공격을 묘사합니다.

  길 가, 돌 밭,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앗들은 결국 사탄의 방해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 쯕정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

 

  개혁주의 학자들은 길 가, 돌 밭, 가시덤불에 속한 자들을 성도라고 표현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이들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거듭난 자들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들이 가진 신앙을 <일시적, 상상적> 믿음이라 선언하는데 많은 논란이 됩니다.

  성령이 내주함과 조명없이 말씀을 듣고 깨닫음과 큰 기쁨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마13:19,20)

  성령의 내주함이 없이 오랜 세월동안 힘겹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마13:22)

 

2. 거듭남으로 인해 주어진 흰 옷이 더럽혀 질 수 있는가?

 

  거듭난 자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옷을 입게 되었다는 표현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완료형으로 현재형으로, 그리고 미래형으로도 나타납니다(갈3:27, 롬13:14, 골3:12, 계3:4,5, 7:9,13,14, 16:15, 19:8).

  이미 더렵혀진 자들에게도 회복의 기회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유1:23, 계3:18).

  이것은 단순하게 성령에 의한 보증으로 보면 단숨에 시제에 대한 자유롭게 사용함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옷을 통해 거듭남을 바라보면 거듭난 자도 다시 타락하거나 실족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들이 다시 지워질 수 있는가?

 

  이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접근이 가능합니다. 

  거듭난 자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을 줍니다. 

  모세와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선명하게 선언합니다.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출32:33)

 

  여기서 범죄한다라는 의미에 대해 사도요한이 두 가지 관점에서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첫째는 회개할 수 있는 죄가 있다는 것과,

  둘째는 회개가 불가능한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히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5:16)

 

  모세나 사도 요한이 바라 본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불신자들이 짓는 죄가 아닙니다.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성령을 거부하는 성령 훼방죄를 의미합니다.

  성령 훼방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대해 성령의 조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훼손시키며, 그 은혜에서 의도적으로 떠나는 것이라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죄는 대부분이 거듭난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와 같습니다.

  요한일서에 나오는 교회내의 영지주의자들 역시 먼저 복음을 받았던 자들이지만

  사탄의 교훈(영지주의)으로 빠진 자들입니다(요일5:21, 계2:6,14,24).

 

  모세시대 역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계속해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시78:19-20)

 

4. 예수님이 바라보는 거듭난 자의 구원

 

  예수님이나 사도들은 구원의 시제에 대해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완료형으로도 과거로, 현재로, 진행형으로, 미래형으로 편하게 사용합니다.

  구원에 대한 성령의 보증하심을 이해하면 이런 문제로 헤매이지 않습니다.

 

  거듭난 자는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이라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에게서 동일한 원리를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원칙 아래서 행위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령이 내주하시고 역사하심으로 인한 행위이며 그 결과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누누히 말씀하신 <열매로 알리라>는 말씀은 성도들에게 내주하는 성령을 따라

  살아감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들>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에서 단순히 행위구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부류들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내주로 인한 열매라는 것을 몰랐기에 나온

  부산물로 생각하면 됩니다.

  이런 것들은 다 오류들의 산물입니다.

 

  다시금 예수님은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곧 구원받은 자의 외적증거들이기 때문입니다.

  *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오은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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