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교수의 요한계시록은 매우 독특합니다.
무천년설을 믿다가 역사적 전천년설로 옮겨갔지만 어느 한 편을 버렸다기 보다는
두 곳의 장점을 모두 취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두 곳을 통합할 것인지 아니면 뒤섞여서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희비가 떠나지 않습니다.
외적인 몸(형태)은 전천년설의 틀을 유지하지만, 실질적인 해석(내부)은 무천년적 흐름을
취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4, 5장에 나오는 하늘 보좌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무천년적 흐름을 따릅니다.
계시록의 많은 부분들을 상징으로 해석하면서 혼란속으로 빠져가는 느낌입니다.
1. 보좌가 상징이다?
요한이 성령 안에서 제일 먼저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저자의 견해입니다.
"하지만 요한이 본 것은 상징적 환상 장면일 뿐 하늘에 실제로 존재하는 가시적 보좌가 아니다.
보좌는 하나님의 왕적 통치권을 상징하는 술어일 뿐이다"(p.112)
이한수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하늘에서는 어떤 보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도 없고, 그 우편에 앉아 있다는 예수님의 보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24장로들이 앉았던 보좌 역시 상징이고, 장차 성도들이 앉게 될 모든 보좌도 허상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런 견해가 성경적일까요?
만물이 부른 노랫가사가 상징적인 것일까요? 실제적인 것일까요?
*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5:13)
2. 유리바다는 성전 바닥이다?
저자는 보좌를 상징으로 묘사하면서 나머지 모든 것들도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를 성전 바닥이라 주장합니다.
"4-5장이 하늘 성전의 모습을 그린다는 사실을 주목할 때, 보좌 앞에 펼쳐진 수정과 같이 맑은
유리바다는 성전 바닥을 비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바다는 계시록에서 악이 거주하는 출처로
자주 언급되기 때문에, 수정과 같이 맑은 유리바다는 악의 출처인 바다와 정반대되는 이미지 언어라고
할 수 있다"(p.114)
만일 유리바다가 성전 바닥이라면 계15:2에 나오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는 무슨 뜻일까요?
상징은 무엇이든 없애버리라고 준 해석학적 도구가 아닙니다.
그 실체를 좀 더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보좌 '같은 것'이나 유리바다 '같은 것'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보좌와 유리바다는 그 자체로 표현합니다.
그것을 꾸미는 수식어는 다양하지만 그 실체마저 부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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