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교수는 두 증인 이야기를 가장 난해한 곳으로 선정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을 모두 상징으로 해석하기에 난해한 것입니다.
1. 저자가 상징으로 이해한 주요 인물들과 사건
① 교회를 상징하는 것들 - 성전과 제단에서 경배하는 자들(1)/성전 마당(2)/거룩한 성(2)/두 증인(3)/
두 감람나무(4)/두 촛대(4)/두 선지자(10)
② 초림부터 재림까지 - 1,260 일 - 두 증인의 예언 기간(2)
③ 초림부터 재림까지 권능의 능력들(실질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강력함) - 예언하는 삼년 육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음(6)/대적자들을 불로 죽임(5)/물을 피로 변하게 함(6)/원하는 대로 재앙을 내림(6)
-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망각한 해석입니다.
④ 이 세상으로 상징화 된 것 - 두 증인이 죽은 큰 성/ 애굽/ 소돔(8)/ 주께서 십자가에 죽은 곳(8)
⑤ 불신자 - 이방인(2)/땅에 사는 자들(10)
⑥ 두 증인의 죽음(7-9) - 초림부터 재림 사이의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
2. 저자 이한수 교수가 상징으로 보지 않는 것들
① 큰 지진(13) - 특이하게도 상징으로 보지 않으며, 실질적인 지진으로 확신합니다.
②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 승천 - 어느 곳에서는 죽음을 고난에 대한 상징으로 보지만 그들이 부활하여 승천했다는
것은 실질적인 것으로 보려 합니다 - 두 증인이 교회라면 죽음 후 부활, 승천하여 모두 하늘로 올라가나요???
③ 악인들의 회개(13) -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또 그 때 발생한 큰 지진으로 인하여 살아남은
악인들이 모두 회개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해석은 문제가 있습니다. 살아 있던 모든 악인들이 회개한다면
재림 때 악한 자들은 한 명도 없게 됩니다???
3. 이한수 교수가 두 증인을 상징으로 보는 몇 가지 이유
그 가운데 가장 특이한 주장은 이렇습니다.
"두 증인이 전체 교회공동체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두 증인의 패배와 부활을 보게 될 것이라는 11:9-13의 구절을 통해서 자명해진다.
그들(두증인)이 개인들이라면 어떻게 온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과 부활을 구경할 수 있겠는가?
세상 사람들이 두 증인의 죽음과 부활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세계 어디서나 보게 된다는 몇몇 학자들의 주장은
본문의 취지를 떠나 상상의 나래를 편 것에 불과하다"(p.209)
자문자답에서 모순도 보이고 정답도 보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이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지금 시대는 오지의 어떤 곳에서 일어난 사건도 전 세계로 중계되어 모두가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스마트 폰만 가지고 있어도 가능합니다.
적그리스도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에게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말씀을
옛날 사람들은 이해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자가 두 증인 사건을 초림부터 재림 사이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기에
더 이상 진전된 해석을 막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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