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신학의 흐름을 가르는 줄기가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무천년주의 신학은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며, 역사적전천년주의의 신학자들 중에서도
그런 견해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 성을 어느 것으로 보느냐에 따라 성경을 보는 눈은 크게 달라집니다.
크게 보면 어린양의 신부로서 교회로 보는 것과 실질적인 도성으로 보는 견해로 나뉩니다.
★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계21:9-10)
이 한 구절을 보면 누구나 헷갈립니다.
어린 양의 아내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곧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상징으로 보는 견해는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합니다.
왜 무생물인 새 예루살렘 성이 신부가 될 수 있을까요?
왜 어린 양의 신부는 교회 즉 성도들이라고 말하면서 이곳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이라 할까요?
*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계19:7)
많은 오해들을 일으켰던 계21:9-10절과 유사한 구절이 있습니다.
왜 우리가 오해를 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2)
새 예루살렘 성을 묘사하면서 신부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소중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신부의 모습에 비유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본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as(마치 ~ 처럼)를 사용하여 비유로 나타냅니다.
"...as a bride adorned for her husband.
실제로 새 예루살렘 성이 어린 양의 아내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신부와 같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상징으로 해석하여 교회 즉 성도들의 모임으로 만들어 버리면
교회의 위상은 대단히 높아지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장막을 없애버리는 커다란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재림 때 아버지의 영광을 비추는 새 예루살렘 성의 실종은 아들 예수님이 받을 영광을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실수는 결코 해서는 안될 것이며, 지금껏 실수했던 것들을 철회하고
다시 복원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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