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전한 메시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 나라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였고, 반면에 오해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자세하게 설명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1. 장차 나타날 하나님 나라만 중시하면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등한시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가시적으로 나타날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있었습니다.
시대적으로 500년이 넘게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삶은 피폐할 대로 망가졌기에 메시아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을 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교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은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들의 질문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나이까"(눅17:20)
예수님은 이런 질문에 대해 단계적으로 대답합니다(눅17:20-21).
①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
②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다.
③ 가시적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는 주님이 고난을 받고 다시 영광을 받을 때이다(눅17:22-30)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를 갈망했던 자들은 종종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소홀이 여깁니다.
현재 성령으로 임한 하나님 나라를 도외시한 채 가시적인 나라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해 그들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소중히 여기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셨습니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
2.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는 예상하지 못한 때에 인자의 오심으로 이루어진다.
누가복음 17장은 장차 나타날 가시적인(재림) 하나님 나라를 깨어 준비하라고 경고합니다.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현재적인 하나님의 통치에 깨어 순종하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과 같이 가시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순식간에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통치에 불순종한 자들은 멸망을 피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당시 청중들에게 이런 나라가 반드시 임하지만 먼저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알려줍니다.
메시아가 고난을 받은 후 영광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십자가 사건에서
제자들처럼 실망하고 흩어지게 됩니다.
사실 위의 두 가지(1,2번)는 청중들에게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입니다.
마치 마음이 들떠 있는 자들에게 차분하라고 말하면 공감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위의 두 가지 모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도들과 오순절 이후 교회로 돌아온 자들을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이스라엘은
두 가지 우려했던 일들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서를 보면서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위의 두 가지와 더불어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이해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부분 역시 아직까지 연구가 미진합니다.
구약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왕이시며 그 분이 성령으로 통치하셨습니다.
이 부분도 요한계시록처럼 이해한 사람이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해할 때 예수님이 가졌던 우려들이 사라지며,
성도는 이 땅에서 신앙생활이 성숙해지면 영원한 소망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처럼 현재의 삶이 팍팍할수록 주의 재림만 갈망하는 성도들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순종하면서 재림을 갈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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