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은 성령에 대해 다양한 표현들로 묘사합니다.
외골수적인 학자라면 다양한 표현들을 수용하지 못하며,
그 결과 성령론은 빈약한 수준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란 주제로 창세기를 펼쳤던 박영선 목사님의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성령인데 확실하게 무엇이라 말하지 않고 책은 결말을 짓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
이사야 선지자는 당대의 청중들이 잘 이해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펼쳐진 손은 성령의 일하심을 가리킵니다.
*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
(사5:25, 9:12, 17, 21,10:4)
성령의 다양한 표현들을 주셨는데 쳐다보지 않음은 귀찮거나 믿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문을 하는데도 완악함이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벗어나거나 다를 때 거부감을 노출합니다.
믿고 싶은 것만 혹은 이해한 것만 믿으려는 것은 광대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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