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21:36) |
가끔 유명 교수나 장군들이 천진난만하게도 사기를 당하는 사건들이 종종 보도됩니다.
아니 저런 분들이 어떻게 사기를 당하지?
최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진 분들이 아닌가?
몇 년전에 토끼를 기른 적이 있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다보니 그들이 잘 먹는 것을 주는 것이 큰 기쁨이었습니다.
토끼는 쓴박이 풀을 좋아합니다.
이름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도시 사람들은 이 풀을 잘라서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녔던 길을 토끼 생각하면서 걸으니 쓴박이 풀이 잘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 아름 꺽어다 주면서 행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눈을 뜨고 찾아보려하니 너무 잘 보이는 것입니다.
반대로 미혹을 받아 넘어지려면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이상하지요? 왜 이리 안보이는 것일까요?
같은 말씀을 보면서도 자기 중심적으로 보기에 그렇습니다.
환난 전 휴거란 안경을 쓰고서 보니 비슷하게 표현되면 가져다 사용합니다.
앞뒤 문맥을 보지 못합니다.
무엇을 <능히 피하라>는 말씀일까요?
바로 앞 구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주의 재림 전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의 마음이 둔하여집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인하여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4) |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오심을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요란스럽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늘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주님이 오심이 화가 됩니다.
준비하지 않는 자는 어떤 자들입니까?
마음이 둔하여 무감각한 자들입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되었을까요?
이 세상 것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 등으로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눅8:14)
즉 알곡이 되지 못함으로 쭉정이들로 분류되어 불에 태워집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런 비유들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전달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
히브리서 기자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6:8) |
그러므로 눅21:36절은 환난 전 휴거로 핍박을 피하란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그런 핍박이 왔을 때 성령을 따라 판단하지 않음으로 주의 재림이 덫과 같이 임해,
상이 아닌 형벌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란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믿음이 없는 자들은 삶 자체가 힘들기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려는 것을
피하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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