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사탄에게 내어 줌

오은환 2014. 1. 19. 17:31

<사탄에게 내어준다>는 의미를 잘 이해할 때 올바른 구원론이 형성됩니다. 

 

*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전5:5)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전7:5)

*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딤전1:20)

*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계2:24)

 

구원을 논하면서 한 번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구원에 이른다는 학설을 따른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란 말을 믿습니다.

이런 경우에 위 구절들을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이 합당함을 증거하려 합니다.

 

죄를 지어서 비록 육신은 멸망당한 것 같지만 그 영혼은 절대 버림받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자신의 의붓 어머니와 간통한 자가 교회 내에 있습니다(고전5장).

그런데 그런 자를 교회가 아무런 징계도 안하고 여전히 같이 교제합니다.

 

바울은 이런 대처에 대해 분노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를 출교 시키라고 명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내 보내는 것을 출교라고 합니다. 사탄에게 내 준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문제를 짚어보면, 왜 이 사람은 의붓어머니와 간통을 했을까요?

단순히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수많은 문제들은 교우들이 개인적으로 범죄한 것들을 나열한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의 문제를 가진 자들에게서 연쇄적으로 파생된 사건들입니다.

 

초대교회와 속사도, 교부시대를 통해 사탄이란 말을 사용해서 징계했던 자들은 모두 하나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영지주의자들에게 이런 호칭을 사용합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영지주의 교훈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사탄의 깊은 것 - 계2:20>이라 했고, 바울은 영지주의에 빠져 예수님과의 처음사랑을 버린 자들을 향해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 - 딤전5:15>도 있다고 언급합니다.

사도요한은 이런 이단교훈을 복음이 아니라 <우상 - 요일5:21>이라 정죄합니다.

영지주의자 말시온을 보고 <사탄의 아들>이라 명하기도 합니다.

 

영지주의에 빠진 자들을 <처음 사랑>을 저 버린 자들로 칭합니다.

그리고 영지주의 교훈에 빠지려 하는 자들에게 복음으로 돌아갈 것을 말하면서 <처음 사랑> 혹은 첫사랑이라 표현합니다.

이런 표현법들은 초대교회에 익숙한 것이기에 우리가 잘 알고 성경을 읽으면 매우 유익합니다.

반대로 모르면 현재적인 관점에서 엉뚱하게 해석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계시록2:4절에 언급하는 에베소 교회의 첫 사랑 상실 문제는 우리가 대략적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낸 것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 됩니다.

주님과의 사랑이 식고, 조금 메말랐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중 일부가 복음에서 떠나 니골라 당의 교훈 즉 영지주의로 떠나갔다는 뜻입니다.

 

이런 악한 자와(고전5장), 빌레도와 후메내오 같은 영지주의자들이 출교당하는 것이 단순히 육체적인 출교에 불과하며

그 영혼은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몇 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첫째, 출교시켜야 하는 이유로 교회 공동체가 더 이상 이런 비복음으로 오염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런 악한 자들에게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지상의 교회가 내린 징계로 인하여 공동체로 추방되는 것을 통해,

그런 자들이 더 이상 사탄의 도구가 되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을 돌아 볼 시간과 자신이 믿는 영지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셋째, 정말 힘들겠지만 이런 출교의 과정을 통해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렀으면 하는 바울의 소망입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출교시키면서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 명백하게 드러냅니다.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자 - 딤전1:19>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데, 그들은 그런 믿음을 버렸단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에 다시 회복되었다는 보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통해 초대교회를 위협했던 영지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함을 보게됩니다.

영지주의를 보지 못하면 사도들이 이야기하는 악한 자들에 대해 피상적인 상태밖에 보지 못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더 이상 성도가 아닙니다.

사도요한은 이들이 교회 공동체에 있었지만 그런 교훈을 따라 갔기에 공동체를 떠난 자들로 낙인을 찍습니다.

*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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