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구약 다시보기

오은환 2014. 1. 30. 22:08

 

총신 신학대학원 다닐 때가 가끔 생각납니다.

구약신학을 배우면서 아담과 맺은 것이 행위언약인지, 아브라함과 맺은 것은 은혜언약인지

논란이 많았습니다. 결론은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하고, 전통을 따라 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느껴집니다.

 

왜 구약을 다시 보아야 할까요?

잘 보았다면 다시 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확실하게 보자는 취지입니다.

 

구약백성들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남아 있습니다.

율법을 지켰는지, 은혜 안에 있었는지 아무도 확고하게 전하지 못합니다.

은혜 안에 있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인데, 그것이 어떻게 구약백성들에게

유효하게 했는지에 대해 함구합니다.

 

칼빈같은 위대한 학자도 이런 문제에 대해 엄청난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이렇습니다.

“구약 백성들은 구원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의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언뜻보면 매우 쉬운 답변 같지만, 다시 생각하면 무척 어렵습니다.

어떻게 그 의가 전달되었을까요?

이 질문을 하지 않고 칼빈은 글을 맺은 것 같습니다.

 

개혁주의가 이렇듯 명쾌하게 나가지 못한 반면에, 세대주의는 각 세대별로 하나님의 통치 형태가 다르고, 구원의 형태 또한 다르게 나타났다고 쪼개였습니다.

그러나 둘 다 진리에는 많이 모자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을 통치하지 않습니다.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 서기관, 레위인, 사도, 목사, 교사 등이 있지만 그들은 신앙생활을 돕는 자들이지 지배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고후1:24)

 

하나님은 율법만 던져 주고 잘 지키라하지 않았습니다.

잘 지키면 구원받고, 잘못 지키면 지옥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은혜로만 그를 돌보았기에 모든 잘못을 쳐다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세대를 나눌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 전 시대를 통해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고, 또한 말씀을 조명하여 밝히 드러내서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성령을 주셨습니다.

말씀과 성령은 아담부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옛 언약을 성취하고,

새 언약을 선포하실 때까지 늘 함께 했습니다.

 

성령이 구약 백성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성전이었습니다.

신약의 스데반 집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행7:51)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성령을 거스렸단 말입니까?

스데반 집사는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7:53)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성령이 조명한 율법을 그들은 의도적으로 거부하였단 말씀입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율법을 조명한 성령의 소리를 의도적으로 거부한 것입니다.

왜 거부했을까요?

거기에는 엄청난 희생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복을 걷어찬 이스라엘을 향해 이사야 선지자의 말로 대신합니다.

*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마13:15)

 

야고보는 그의 서신서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꺼냅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4:5)

 

구약백성들 가운데 성령의 내주하심을 선언하기에 주석가들은 이 말씀 앞에 당황해 합니다.

그리고 찾아봅니다. 구약 어디에 이런 말씀이 있단 말인가? 야고보는 어디서 인용했는가?

주석가들의 결론은 구약 어디에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이 정도에서 끝내려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조금만 노력하면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똑 같은 말씀을 하고 있기에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고후6:16-18)

 

흥미롭게도 첫 번째 구절은 출애굽 때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출29:45-46)

바울은 구약 백성 가운데 성령의 임재하심을 위 구절을 통해 증거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언약의

마무리는 위 구절의 반복입니다.

즉 구약의 어느 시대나 성령의 통치가 있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관용구로서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혹은 동행하신다>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인용한 두 번째 구절 또한 매우 흥미롭습니다. 앞 구절이 종 되었던 애굽으로부터

나오면서 주신 말씀이라면,

두 번째 구절은 바벨론 포로에서 나오게 함을 배경으로 합니다.

*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바벨론)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사52:11)

 

성령의 사람은 거룩하지 못한 것을 구별해야 하며,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주신 말씀과 그것을 조명하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렇습니다.

 

다시 야고보서로 돌아가서 4장 5절을 살펴보겠습니다.

*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4:5)

 

<시기>라는 말을 먼저 주목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의 강도를 표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종 되었던 백성을 거룩한 피(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시고, 그들에게 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 ...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출20:5, 신5:9)

 

언약을 맺으며 서로(하나님과 이스라엘) 최고의 사랑을 나누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행하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형벌을 내리십니다.

*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34:14)

 

 <성도의 몸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견해에 대한 정리>

 

 

바 울

야 고 보

신약 본문

고후6:16-18/고전3:16, 6:19

약4:5

인용한 구약 본문

출29:45-46/사52:11

출20:5, 신5:9/출34:14

구약 배경

출애굽(시내산 언약)/바벨론 포로 귀환

출애굽(시내산)

구약백성의 정체성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서

거룩함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서 열매

맺는 삶

구약 다시 보기

이방인들은 구약시대에는 유대인들처럼 성령이 거하는 전이 되지 못함(엡2:22, 벧전2:10)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이미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셨기에 성령의 내주와 교제 가운데 풍성한 삶을 누림(신30:6,33:27-29,갈4:29)

말씀을 듣는 대상

이방인 성도들

유대인 성도들

본문이 주는 교훈

<이방인들도 구약 백성들처럼> 성령의 전으로서 백성 됨

유대인들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항상> 성령의 전으로 열매

맺는 삶 요구

 

 

 

우리가 성령을 주심을 알지 못하면 이런 의문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이야 우리를 죽도록 사랑하실 수 있겠지만, 우리는 무슨 수로 사랑을 한단 말인가?

맞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사람인데 하나님이 요구하는 수준의 사랑을 평생동안 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아내나 가족도 사랑은 커녕 싸운 날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약함을 너무도 잘 아셨기에 우리 수준으로는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가능하도록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마음에 할례는 곧 성령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롬2:29). 성령의 임재와 역사를 언급함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성령의 임재와 그 결과 거듭남과 양자됨 그리고 거룩한 예배와 삶을 보게 될 때

구약 성경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아브라함이 성령의 사람이란 것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증거합니다.

*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5:29)

 

이제 우리도 제대로 보는 관점으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성령을 따라 살아간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변함없는 말씀입니다.

*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갈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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