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들은 때때로 극과극을 달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노예의 아들에서 애굽의 왕자로,
왕자에서 애굽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목축업자로(창46:34),
목축업자에서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이렇게 삶의 극을 달린 분도 드물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학문과 무예를 닦아서 대단한 스펙을 쌓았습니다.
* 모세가 애굽 사람들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행7:22)
40세가 되어서는 하나님과 깊은 교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마음은 이스라엘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행7:25) |
스데반은 이 상황을 모세가 잘못 깨달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책임을 넘김니다.
모세의 마음 속에 일어났던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결단은 분명 하나님이 주신 것이 맞습니다.
*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기를 원했지만, 이스라엘은 그를 지도자로 세울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출2:14, 행7:27)
모세는 자기의 계획이 외면당하자 애굽인을 죽인 죄의 두려움으로 광야로 도망갑니다.
하나님의 반전을 기다리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함을 받습니다.
일년 이년도 아닌 장장 40년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애굽에서 배웠던 모든 것들이 무익한 것이 되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대단한 실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실제로 말이 어눌한 자가 되었습니다(출4:10).
학문과 말이 능했던 자가 어눌한 자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충격을 받았을 때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사명을 주었을 때도 모세는 여전히 조심스런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가 겸손해서 사명을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출4:13).
그는 지쳤고, 다시 그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모세가 받은 사역에서의 외면당하심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사용하기까지 긴 인내심이 필요했다는 양면성을 보게됩니다.
사역자들은 자신이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때가 바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시는 때라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사역자와 하나님의 시간이 서로 다릅니다.
결국 사역자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외면당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준비하였고, 그런 모든 과정이 수고였는데 언제 나를 쓰시려 하는가?"
주의 일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며, 그 일을 감당할 정도의 성숙함이 없이는
오히려 해가 됨을 보게 됩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40년의 외면받음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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