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 그의 <해산함>으로 < 구원을 얻으리라> (딤전2:15) |
본문 해석상 크게 두 가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있음을 억지로 감추지 말고, 우리의 지경을 넓혀서 바른 해석에 접근하면 됩니다.
1. 구원을 얻는 조건 - 믿음, 사랑, 거룩함에 거하면
흔히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다라는 전제에 갇혀 있는 분들은 여러가지 나열한 것들을 보면
하늘이 무너지는듯히 힘겨워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들은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여러가지 용어들을 사용해서 자유롭게 표현합니다.
시제에 대해서도 과거, 현재, 미래, 완료형 등 자유자재로 가져다 씁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도들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깨끗케 하심)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이 두 가지는 항상 하나입니다.
죄인이 깨끗케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뿐입니다.
속죄가 단지 깨끗하게 하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받아도 되고 안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시므로 믿는 자는 무조건 받게 됩니다.
깨끗케 된 자가 성령이 없거나, 성령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없거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믿음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사랑, 거룩함...
다른 용어들을 자유롭게 가져다고 쓰실 수 있습니다.
본문처럼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리고 선물로 반드시 받은 성령의 역사로
<그 안에 거하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구약이나 신약 모두 동일한 구원의 원리임을 보여줍니다.
2. 해산함과 구원
배경을 알아야 여자들이 <해산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섬기는 디모데에게 산적한 문제중 가장 심각한 것은 <영지주의>의 거짓된 복음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한 분 뿐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신들의 족보를 만들 정도로 많은 신들을 양산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신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신령한 진리를 깨달으면(영지) 자신들도 중보자가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예수님이 영지주의를 사탄의 교훈(계2:24)이라 했듯이, 그들은 사탄을 하나님의 자리에 앉히려 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범죄하였던 자들을 신이 보낸 중보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영지주의에 대해 공부하면 잘 알 수 있는데, 그 분량이 매우 많습니다)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5)
누구나 잘 알고 있고, 고백할 수 있는 진리를 왜 쓰셨을까요?
영지주의자들이 이것을 믿지 않고 교회 내에서 분란을 일이켰기 때문입니다.
이들 영지주의자들은 특별히 여자들을 대단한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 중 선악과를 따 먹었던 하와를 아담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세상을 창조했던 구약의 하나님을 신들 중에서 제일 하등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하등한 창조주가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창조가 완전하지 못하고, 인간이 이런 고생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열등한 창조주의 명령을 거부한 하와에게 선각자라는 호칭을 부여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거꾸로 읽기로 작정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결국 창조질서를 거부하는 자들이 신령한 지식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금욕주의입니다.
창조주가 주신 질서에 따라 가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들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둘째는 도덕폐기론입니다.
금욕주의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거부하는 의도입니다.
초대교회 초기의 영지주의자들은 금욕주의가 더 많았습니다.
(니골라 같은 경우도 금욕주의적 영지주의자입니다 - 엡2:4-6)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방탕함을 즐기는 영지주의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여자들이 해산 역시 영지주의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창조주의 질서를 거부하려는 의도로 해산을 거부합니다.
창조주가 여자들에게 씌운 굴레로 보기에 해산을 거부하는 것을 지혜로 여겼습니다.
훗날 이레니우스는 이런 영지주의자들에 대하여 <이단반박>이란 책에서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성적인 방종에 거하면서도 해산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묘안들을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여러 의식중 마지막 단계에 가면 성적방종을 통해 창조주를 저주합니다.
일부일처를 말하는 성경을 부정하고 여자는 공동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논지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결혼을 했든 안했든 그들은 집단으로 성적 관계를 맺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 일어났던 어머니와의 성관계 맺음을 단순한 개인적 범죄로 인식할 것인지,
아니면 영지주의 의식 가운데 일어난 악한 행위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 고전5:1-13)
한 마디로 창조주가 만든 모든 체계를 깨뜨리는 것이 신령한 지식(영지주의)을 가진 자들이 해야 할 일로 알고
늘 악한 제도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해산함으로 구원에 이른다>라는 말은 앞의 말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과 <해산함으로 구원에 이름>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즉 여자는 창조주가 세운 질서 가운데 거할 때 구원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사탄의 교훈인 영지주의에 속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이 세운 명령 가운데 거하는 것이 구원이란 의미입니다.
이런 표현들이 성경 서신서 곳곳에 있기에 영지주의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배경을 모르면 이상한 교리를 만들어내는 잘못을 범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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