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아브라함이 <믿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었느냐 하고 물으면 <약속을 믿기만> 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브라함을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표본으로 삼으려 합니다.
아브라함을 표본으로 삼는 것은 옳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면, 그에 대하여 잘못 생각한 것들은 수정되어야 합니다.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 |
약속의 자녀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느 누구나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분으로 나타내며, 아브라함은 먼저 그 앞에서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행한단 말입니까?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성령을 따라 행하란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타나서 말씀합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삶이 무엇이었는지 잘 정리해줍니다.
왜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되었는지 이삭에게 알려줍니다.
*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창26:5)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신 여러가지 율례와 법도를 지킨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한 성령을 따라 행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후손들이 출애굽 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학2:5)
바울은 아브라함과 그 공동체가 성령을 따라 살았음을 알려줍니다.
*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하갈과 이스마엘) <성령을 따라 난 자 - 이삭>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
아브라함과 그의 종의 대화를 보면 얼마나 성령에 민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장면은 성령을 따라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성령이란 이름대신 <하나님의 사자>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창24:7,40).
이사야 역시 성령과 하나님의 사자라는 말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출23:20-22, 사63:9-14).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다른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 앞에서 행하라 합니다.
즉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완전하다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성도의 삶에 대해 이와같은 말씀을 합니다.
첫째는 항상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깨끗함을 받으란 말씀입니다.
그리고 난 후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변화를 받아>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끗함(코쉐르)을 입고, 그 결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거룩함(코데쉬)을 입는 삶은
창세이후로 모든 성도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재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2)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였던 완전함입니다.
오늘날 모든 성도들 역시 이러한 완전함을 요구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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