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학작품 속에 결코 빠질 수 없는 단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사랑입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연이든 그 속에 사랑이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옛 계명이나 새 계명 모두 하나의 동일한 특징을 소유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요이1:5) |
<서로 사랑하자> 이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진하는 삶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사랑의 범위가 매우 넓으며 이 세상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가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의 힘이 우리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사랑의 힘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마저도 사랑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사랑의 힘을 공급받을까요?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습니다.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
위 구절까지만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이후에는 우리자신이 열심을 내서 사랑하라고 하지 않는가하는 오해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새 사람입니다.
*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5-6)
바울은 성령을 또 다른 말로 사랑이라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의 힘이 생겨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구약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만일 이것을 알지 못하면 신구약 성도들은 각각 다른 존재들로 묘사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성령으로 역사하는 힘을 따라 승리한 것입니다.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구약성도들에게 마음의 할례를 베푸셨던 분은 성령님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에서 확인시켜 줍니다(롬2:29)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성령을 따라 살아갔던 사람들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구원론의 정석입니다.
또한 사랑의 힘의 근원입니다.
사랑의 힘이 없다고 느낄 때 그 힘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찬양과 기도, 말씀을 통해 공급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받으세요.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특권이며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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