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계시록(주제별)

재림이 보인다(22) - <휴거>,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가?(계15장)|

오은환 2013. 9. 29. 16:51

 

 

계시록에서 휴거가 실제로 일어난 기사는 <15:2-4>절입니다.

'환난 전'도 아니고, '환난 중간'도 아니며,  대환난이 끝났을 때입니다.

 

계시록의 스토리를 이해하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과도하게 과거에 들어왔던 이야기에

집착해서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한 결과,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언제 휴거가 일어납니까?

다시 말하지만 환난 전이나, 중간이 절대 아닙니다.

15:1절에 보니, 일곱 천사가 일곱 (대접) 재앙을 가졌으니 이는 마지막 재앙이라, 

일곱 대접 재앙들을 가진 천사는 언제 등장합니까?

일곱번째 나팔이 울릴 때입니다(10:7, 11:14, 15)

 

잠깐 정리합니다.

(일곱번째 나팔이 울리자) 일곱 대접 재앙들을 가진 천사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대접을 땅에 쏟기 전(15:7-8, 16:1), 성도들이 휴거합니다(15:2-4).

휴거후 남은 악인들에게 재림하신 주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형벌을 쏟는 사건이

계16장 입니다.

 

계시록에서 중심 축은 주의 재림입니다.

재림의 날이 언제인지는 우린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재림이 일어나는 사건은, 마지막 나팔 즉 일곱 째 나팔을 불 때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2. 어떤 상황에서 휴거가 일어납니까?

쉽게, 반복해서 말씀하면 이렇습니다.

성도들이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주님이 오십니다.

성도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주님이 오십니다(히9:28, 행2:21).

-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시124:2-3)

 

휴거를 다른 말로 '모세의 노래'라고 합니다(15:2)

모세가 목숨이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홍해를 건넌 후 뒤돌아 보니 애굽의 군사들이 심판을 받고

전멸당했습니다(출15장).

홍해 바다 건너편에서 불렀던 노래가 모세의 노래입니다.

 

휴거를 또 다른 말로 '어린양의 노래'라고 합니다(15:2)

모세 시대처럼,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우상과 표를 받지 않음으로 매우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난

사건이 휴거입니다.

- ..짐승과 그이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15:2)

 

휴거에 대한 상황묘사는 성경에서 항상 동일합니다.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4:12)

( 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표를 받지 않는 자들이 진정한 성도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도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구약도 동일합니다.

-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끝나리라> (단12:7, 계13:5)

보십시요, 후삼년반이 지나서, 성도가 무참하게 짓밟힘을 당하고... 그렇게 되면 주님이 오셔서

의인에게 상급을, 악인에게 영원한 부끄러움을 주겠단 이야기입니다(단12:2).

 

-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7:25)

커다란 핍박 속에서 후 삼년반을 보내게 될 성도의 모습을 너무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3. 상황재연

휴거가 일어난 상황을 제가 설명해 보겠습니다. 범세계적인 적그리스도의 통치에 유일하게

순종하지 않는 부류가 성도들입니다.

경제적 제재를 통해 성도들을 압박하던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자들은 점점 더 심하게 성도들을

몰아갑니다. 공공연하게 성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목숨을 거두어갑니다.

이 일은 점진적으로 진행됩니다.

성도들은 더이상 평범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자들(폭도들)을 피해 산으로 들로 도망치고 숨어 지내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은 심판 재앙을 통해 악인들이 여전히 돌아오길 원합니다.

다섯째 나팔 재앙을 통해 악인들이 영원히 받을 형벌을 미리 맛보게 함으로서 돌아오게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섯번 째 나팔 재앙(둘째 화)을 통해 그들의 모든 가정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거두어

갑니다. 마치 애굽의 열 번째 재앙과 같습니다.

비참하게 죽은 사랑하는 자를 보며,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무섭고 두렵구나 하고 돌아오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완학합니다. 마치 애굽의 바로 왕과 그 백성들 같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데리고 성도들을 완전히 박멸하려 일어납니다.

이것이 16장에 나오는 여섯째 대접 재앙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재앙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습니다.

이 말은 이 사건이 일곱 대접 재앙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휴거의 원인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세상의 군왕들을 이적으로 미혹하여 이 전쟁에 끌어

드립니다. 이 전쟁은 세상전쟁이 아니라, 온 세상의 비참하게 존재하는 성도와의 전쟁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아마도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박멸하려고 정한 날짜일 것입니다.

재림의 모형중 하나가 구약의 하만입니다. 둘째 화 재앙 때 생각나시죠?

그 재앙은 순식간에 세계의 1/3을 죽였다구요.

 

"그 년, 월, 일, 시"

즉 순식간에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하나님만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도 하나님처럼 흉내냅니다.

 

사탄은 하만을 통해 구약성도들을 모두 죽이려 합니다.

아하수에로 왕  12년, 12월, 13일에(에3:13) 유대인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죽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 재물을 마음껏 탈취하라 합니다. 적그리스도 또한 이러한 방법을 취할 것입니다.

 

에스더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하만의 싸움은 마지막 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었던 발람 선지자의 예언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만은 발람이 저주했던 아말렉 사람입니다.

아각사람(아말렉 왕의 이름인지 칭호인지는 ???) 하만을 무척강조합니다(에3:1,10, 8:3,5,

9:24). 아각사람이었기에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발람 선지자의 예언입니다(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 ...그의(이스라엘)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의 나라가 흥왕하리로다(민24:7)

-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민24:20)

 

 

--------------- 본문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아서 첨가 합니다 --------------------

 

4. 15:2절 분석

*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 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1) 잠깐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예수님, 성령님, 네 생물, 이십사 장로들, 천군천사들, 의인의 영들이 있는 곳을

한 마디로 새 예루살렘 성이라 합니다(히12:22-23).

새 예루살렘 성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도성, 장막, 낙원, 아버지의 집, 처소, 천국.... 모두 같은

이름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니 3번에 걸쳐서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고 말합니다(3:12, 21:2,10).

그러면 언제 내려 올까요? 이 부분이 거의 논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천년은 새 예루살렘 성이 교회(성도)를 상징한다고 보기에 실제로 보지 않습니다.

나머지 역사적 전천년이나 세대주의 역시 별로 다루지 않습니다.

 

저는 '성부의 오심'(1:4,8, 4:8)을 통해서 이 문제를 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자신의 장막인 새 예루살렘 성을 예수님의 재림 때 가장 큰 영광을 제공하기 위해

같이 내려옵니다. 즉 재림 때 새 예루살렘성이 주님의 영광을 찬란하게 비추며 내려온다는 견해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사도바울의 견해와(고후5:1-4) 히브리서를 통해 조명해 보았습니다(히13:14).

-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예수님)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4)

 

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재림 때, 확실하게 오신다는 분은 성부, 성령, 성자, 천사들,

주안에서 잠자던 자들(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 죽었던 성도들 모두), 네 생물(보좌와 같이

움직이기에) 입니다.

현재 새 예루살렘 성에 있는 모든 존재들이 재림 때 나타납니다. 이 정도면 이해가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2) 하나님의 보좌 앞에 즉 새 예루살렘 성에 '유리바다'가 있습니다.

그 유리바다를 4:6절에서는 '수정같이 맑은'이란 표현을 사용하여 묘사합니다.

그러면 왜 15:2절에서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제가 휴거된 성도들이 가 있는 곳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유리바닷가라 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상황에서 함께 도래하였기에 지상에 가깝게(?)

왔습니다.

다시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가 보인 것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심판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 (심판이 시작되었을 때 묘사함)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단7:10)

-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3:12)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계15:2절의 불이 섞인 유리바다에서 설명됩니다

  - 단7:10절도 동일한 말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지상에 남겨진 악인들을 향한 형벌이 쏟아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평온할 때 유리바닷가의 모습은 '수정같이 맑은 상태'입니다(계4:6)

반면에 재림으로 인한 심판이 시작되었을 때에 유리 바닷가의 모습은 '불이 섞인 유리바닷가'의

형태입니다(15:2).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4:6절의 수정같은 형태와 15:2절의 불이 섞인 형태는 전혀 다르기에 같은 장소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15:2절에 보면, 불이 섞인 유리바닷가는 또 한번

언급하면서 그냥 '유리 바닷가'라고 합니다.

 

3) 짐승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은 순교자들인가, 살아서 휴거된 자들인가?

여기에 대해 가장 잘 해석하신 분 중 한 분은 죠지 래드(G.E Ladd)입니다.

"15:2-4절에 나타나 노래하는 무리들은 결코 영혼 구원받은 자들이 아니다. 즉 살아서 찬양하는

자들이다라고 합니다"

 

순교자들이 아닙니다. 순교자들은 잠잠히 죽임을 당한 자들입니다.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서 순교당한 자들은 없습니다.

 

-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3)

-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4)

 

모세의 노래에서도 역시 같은 가사가 나옵니다.

-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15:11)

 

이 찬송을 순교자들이 부르는 가사일까요?

살아서 주의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자들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 주께서 <죽은 자에게 기이한 일을 보이시겠나이까>, 유령들이 일어나 주를 찬송하리이까,

  주의 인자하심을 무덤에서, 주의 성실하심을 멸망 중에서 선포할 수 있으리이까(시88: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