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관점에서 세습의 문제를 살펴봅니다.
개교회의 자유로운 결정을 누가 관여해도 될까요?
목회자의 자녀에게 그 교회의 후임자로 모신 것이 자유로운 것이라면 상관없는 것일까요?
교회와 성도의 자유에 대해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어떤 문제들을 대할 때 자유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혹은 어떤 의식에 참여하는 것에서 자유를 논합니다.
예를들어 이방신전에서 제사를 드린 후 시장에 공급되는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서
자유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알맞는 답을 제공합니다.
누구든 고기를 먹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기를 가지고 시험거리를 만드는 사람 앞에서는 먹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그 고기를 먹음으로 넘어지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들 앞에서는 자유를 절제해야 합니다.
세습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점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엄청난 부의 정당하지 않는 물려줌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리에 올라갈 준비나 자격이 없는 자녀를 낙하산 인사처럼 갑자기 사장이 된 자들과 다를 바 없게 봅니다.
교회의 자유가 성도들과 세상 사람들을 넘어지게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의 고백처럼 누군가를 넘어지게 한다면 고기도 포도주도 먹고 마시지 않겠다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어떤 자들은 그 자리에 올라갈 충분한 자격이 '아들'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대형교회를 세웠던 자들이 충분한 자격이 있어서 가능했을까요?
그들이 낮아지고, 못배우고, 병들고,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가능했던 것입니다.
자신을 높여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이제는 그런 자격을 갖추었으니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모순이 됩니다.
세습의 자유를 논할 때 우리는 한국교회의 복음의 문이 닫혀질 것에 대한 두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가 세상을 넘어지게 한다면 절제해야 하며 바울처럼 어떤 것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습의 자유가 결코 복음전파의 자유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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