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면서 극동방송을 청취했습니다.
피디가 어느 신학생들의 설문지를 중심으로 교회에서 어떤 곳을 설교하는지
통계를 알려줍니다.
"목사님들의 설교 본문의 90 퍼센트는 신약이고 나머지 10 퍼센트가 구약입니다"
성경의 75 퍼센트가 구약이고 나머지 25 퍼센트가 신약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비율입니다.
왜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정하는데 주저할까요?
계속해서 피디가 설명합니다.
구약은 한약이고 신약은 양약입니다.
한약은 내면을 변화시키고 양약은 응급상황에 적절합니다.
한국교회는 응급상황적인 처방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신복윤 교수는 칼빈을 구약의 대가라고 불렀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평판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구약보다는 신약의 대가라는 말이 더 훌륭하게 보이지 않는가"
구약을 가장 잘 설명했다는 히브리서를 보면 구약에서 출발해서
신약의 예수님과 잘 연결시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두 동일한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구약설교가 흥미롭고 또 생명력을 지닌 채 전달될 수 있습니다.
구약을 설교하면서 구원과 영생을 자유롭게 전하면 회심이 일어납니다.
구약을 통해 거듭남과 성화를 말하며 성령의 내주로 인한 열매를 언급하여
삶이 변화된다는 설교는 시원한 냉수와 같습니다.
구약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신약 또한 똑바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진리가 희미하여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