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계시록토론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와 하나님의 보좌

오은환 2020. 4. 17. 03:12

지금까지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의 시점을 잘 다루지 않았습니다.

무천년주의는 상징적 접근을 통해 교회들(성도들)로 보았고, 전천년주의는 당연히 재림 후 천년이

지나서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문제를 소홀히 한 대가가 큽니다.

천년왕국을 영원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로 만든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의 시기를 알면 천년왕국에 대한 난제도 풀립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는 성부 하나님의 장막이기에 그 분의 나타나심과도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찾아보면 많은 부분이 풀리게 됩니다.

세 번이나 새 예루살렘 성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옴을 기록합니다(계3:12, 20:2, 10).

 

재림 때 성도들이 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는지 궁금하시지요?

새 예루살렘 성이 도래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1. 불신자들도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시점

주의 재림 때 불신자들도 하나님의 보좌를 봅니다.

구체적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얼굴도 보게 됩니다. 

더 확대하면 하나님의 장막 곧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를 보는 것입니다.

 

*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6:16)

 

다음 구절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진노의 큰 날 곧 재림이 이미 도래하였습니다. 

'이르렀으니(엘덴, came)'의 시제가 부정과거입니다. 

재림이 이미 일어났기에 악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came) 누가 능히 서리요(계6:17) 

 

2.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이 갔던 하나님의 보좌 앞

계시록 7장에 등장하는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이 도착한 곳은 하나님의 보좌 앞입니다.

어떤 자들은 이 시점을 재림 후 천년이 지난 시간으로 보려합니다.

천년왕국 시간에는 성부의 얼굴을 뵙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크게 잘못된 프레임이 엉뚱한 해석을 만든 것입니다. 

 

*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7:15)

 

아들의 재림 때 성부 하나님도 함께 오시기에 이런 표현들이 가능합니다(계1:4,8, 4:8).

성부께서 혼자 오시지 않고, 하나님의 장막까지 수반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며, 보좌 앞에 설 수 있습니다.

 

3. 휴거된 자들이 갔던 유리바닷가

짐승과 그 우상과 이름의 수를 이긴 성도들이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서 노래를 부릅니다.

구체적으로 '유리바닷가'로 묘사합니다.

유리바닷가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

 

*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계4:6).

*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계15:2)

 

주의 재림 때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에 가며, 거기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며,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뵙습니다. 

 

*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계22:4)

 

간단하게 정리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 거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는 것이며,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는 주의 재림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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