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9 장은 주님의 재림을 시각적으로 펼쳐 놓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19장에 가서야 재림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보시길 바랍니다.
19:11-21절의 재림 때 생략된 것들이 많습니다.
1) 일곱 째 나팔이 울린 것이 생략되었습니다(10:7, 11:15절에 이미 나왔습니다)
2) 재림의 징조들이 생략되었습니다(6:12-17절에 이미 나왔습니다)
3) 성도의 휴거가 생략되었습니다(15:2-4절에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4) 남겨진 악인들 중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성도와의 전쟁을 지켜보는 자들이 받는
재앙이나타나지 않습니다(16장에 잘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오직 한 번 뿐입니다. 그러나 계시록에서는 재림의 광경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연결됩니다. 즉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단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조명해 보아야 할 부분은 19:19절입니다.
-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예수님) 그의
군대와(천사들)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19:19)
이 구절을 읽다보면, 마치 적그리스도와 세상의 군왕들이 모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전쟁을 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 악한 자들이 주의 재림을 준비하고 싸울 채비를 하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주의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만 이해하면 재림의 상황은 모두 보입니다.
자주 반복하는 이야기입니다.
재림의 원인을 이야기 하는 곳은 16:12-16절로 여섯째 대접 재앙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이 처절하게 죽임당한 것을 보고 난 후(9:13-21) 이들은 성도들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이 일은 매우 신속하게 준비됩니다.
- 둘째 화는(여섯째 나팔 재앙)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일곱째 나팔, 마지막 나팔)가
'속히' 이르는도다(11:14)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버린 세상의 악한 모든 자들은 성도와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그것이
'여섯째 대접 재앙'이며, '아마겟돈 전쟁'이라 합니다(앞에 기재한 글들을 참고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은 적그리스도와 세상 군왕들에게 성도들 정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미 전쟁은 하나마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목숨을 잃고 또 부르짖는지 모릅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남김없이 성도들을 죽이려는 전쟁을 실행할 때 즉 급박한 위기 앞에서
성도들의 절규를 들으시던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물론 그의 천사들도 같이 옵니다.
이 때 성도를 쫓아가던 적그리스도와 세상 군왕들은 전쟁의 양상이 크게 반전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지막 나팔(일곱째 나팔 = 큰 나팔 소리) 소리와 들려옵니다. 이 때 갑자기, 성도들은
자신들의 눈 앞에서 휴거되고(15:2-4), 이제 이 악한 자들은 재림하시는 주님과 그 천사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의 '전쟁상황이 발생'했고, 이후 전쟁은 하나마나 결과는 뻔합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순식간에 붙잡혔고 불못에 던져집니다.
나머지 군대들은 모두 죽임을 당합니다.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모두 동일합니다.
재림의 징조로 보여 주었던 여섯째 인(6:12-17) 때 왜 세상의 군왕들이 모였고,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산과 굴속으로 피신하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모두 같은 상황입니다.
등장인물도 모두 동일합니다.
*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종, 자유인 - 6:15
* 동방에서 오는 왕들(16:12) = 온 천하 왕들(16:14)
* 왕들, 장군들, 장사들, 말과 그 탄 자들, 자유인들, 종들, 작은 자들, 큰 자들(19:18)
* 짐승과 임금들과 그의 군대들(19:19)
휴거를 다시 말해 '어린양의 혼인잔치'라 합니다(19:6-9).
성경 어느 곳에서는 휴거되는 장소로 "공중에서"(살4:17) 주를 영접한다고 표현합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유리 바닷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계15:2).
모두 같은 장소입니다.
재림 때 유리 바닷가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이 이 땅으로 도래하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또한 성도들이 휴거된 공중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혼인잔치는 결국 새롭게 된 이 땅에서 펼쳐집니다.
새롭게 된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나가 된 하나님의 장막인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성도들을 괴롭혔던 적그리스도의 최후도 눈여결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곳은 죽임을 당하고 불 가운데 던져지는 것으로 나오고(단7:11, 살후2:8),
한 곳은 산채로 불 못에 던져진다고 표현합니다(19:20)
이런 부분 해석은 매우 어렵지만, 적그리스도의 심판의 시간이 매우 짧고 긴박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혼인잔치의 참여 조건으로 나오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19:8) 부분은 논란이 좀 있습니다.
행위냐 믿음이냐?
이건 좀 넓은 측면에서 성경을 보도록 유도합니다.
신약성경을 읽을 때, 특히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유대인들간의 대화를 보시면 종종 오해하기
쉽습니다. 뭔가를 생략한채 대화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뭔지 정의가 필요없이 곧 바로 대화가 됩니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묻는 이가 없습니다.
이 말은 모두 잘 알고 있단 이야기 입니다.
구약 성경이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성도들은 성령이 없이 특별한 방법으로 구원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이 없이 산상수훈을 이야기하면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성령이 없이 심령이 가난할 수 없고,
온유할 수 없습니다. 애통할 수 없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믿음이냐 행위냐 이런 문제로 나눌
성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의 특징은 성령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우리의 행동 근원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사역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 이를 위하여(복음사역 전반) 나도 내 속에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성령으로)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우리 성도들은 거룩한 행실을 쫓아 갑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은혜입니다.
우리의 힘의 근원이 내가 아닌 바로 성령님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와 성도와의 마지막 전쟁 때에 영광스러운 주님이 우릴 도우려 오십니다.
-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보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시10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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