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히브리서와 바울 서신 대조

오은환 2020. 6. 3. 02:29

*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고후3:9,11)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형편없는 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최고의 선물이라 평가합니다.

 

*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라(롬3:1,2)

 

바울은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인가하는 질문과 동시에 두 가지를 드러냅니다.

하나는 할례이며 나머지는 말씀 곧 율법을 가리킵니다.

어쩌면 할례와 율법은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먼저 할례를 받았기에 율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갈3:17). 

둘은 결코 분리할 수 없습니다.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구속의 표로서 그들 속에 성령께서 마음의 할례를 행했기에

주신 외적 표징입니다(신30:6).

 

사도들은 종종 새 언약과 옛 언약을 비교합니다.

그렇지만 옛 언약이 결코 죄를 사하지 못하고 그 결과 구속함을 제공하지 못하기에

새 언약을 주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옛 언약이 비록 그림자인 예표로 주어졌지만 예표가 가리키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효력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예표는 반복되기에 실체가 오면 그 역할을 끝내고 퇴장해야 합니다.

예표는 그 시대(옛 언약)에 필요했기에 주신 선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쓴 구절을 오해합니다.

 

*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옛 언약),

  (새 언약)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9:13-14)

 

옛 언약(히9:13)의 효능과 새 언약의 효능(히9:14)을 비교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하여 옛 언약은 꽝이고 새 언약만이 진짜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일 위에 쓴 고후3:9,11절 같이 옛 언약도 예표지만 영광스럽고,

새 언약은 예표가 아닌 실체가 와서 드린 것이기에 옛 언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효과가 있고(예표가 반복한 것에 비해 실체는 단 번에 드려진 제사), 더 영광스럽다는 것을

비교한 것입니다.

 

옛 언약을 폄하한 것이 아니라 예표지만 영광스럽고 죄 사함을 주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또 옛 언약의 약속처럼 예표가 아닌 실체가 와서 새 언약을 맺고, 비교할 수 없는 영광으로

성도들을 초청함을 선포합니다. 

 

히브리서 9장 13-14절은 옛 언약을 새 언약과 대조하여 깍아내리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예표로 드린 옛 언약도 가치가 충분한데, 새 언약으로 드린 하나님의 아들의 몸 제사는

얼마나 더 위대하고 완전한가를 드러내는 긍정의 대조입니다(히10:14).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부정의 대조 → 긍정의 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