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언약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오은환 2020. 6. 7. 01:10

"하나님이 이 언약 관계를 '조정할 도구'와 '사람' 그리고 '법칙'을 주시지 않으면

이 관계는 지속해 나갈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영적인 형편을

고려해 당신과의 관계를 관리할 도구인 제사와 관계를 관리할 제사장을 세우시며,

그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조정해 나갈 율법들을 주어서 가르치게 했다"

(이병은, 언약 연구의 새 지평, CLC, p.117)

 

주어진 율법들을 통해 언약관계가 유지되는데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이런 일들을

성공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구약 성도들에게 매우 중대한 일입니다.

저자는 제사와 제사장을 통해 율법을 관리해 나간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견해는 저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언약신학자들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한 곳에서도 목회자가 성도들을 개인적으로 완전하게

가르치거나 돌보지 못합니다. 하물며 아무 것도 없던 구약시절에 무엇으로 제사장이 성도들을

관리했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사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나게 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게 함으로

남은 구원을 이루어 나가게 하신다...이처럼 모세의 사역은...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의미는 아니다. 그의 사역은 장차 새 언약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그 일의 예표요, 그림자에 불과하다"(p.117)

 

여기서 언약 연구가 한계에 봉착됩니다.

새 언약은 성령이 함께하심으로 구약과 달리 언약을 도와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주장은

백 번 옳습니다. 반면에 구약의 언약은 성령이 없어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이것이 딜레마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모세는 이(시내산 언약) 목적이 실패할 것을 예견한다...모세는 장차 있게 될 진정한

회복에 대해서 심판 이후에 저들을 고향 땅으로 돌아가게 할 뿐만 아니라(신30:5), 저들의 심령을 고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행할 마음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신30:6)"(p.67)

 

저자의 견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시내산 언약은 단지 문자적인 율법만 주셨기에 사람이 지킬 수 없어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 심판 이후(?) - 바벨론 포로인지 오순절인지 애매함 - 고향 땅으로 귀환하면 그 때 심령을 고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율법을 지킬 수 있다.

  - 만일 심판이 바벨론 포로라면 구약 성도들은 시내산이 아니라 바벨론 포로귀환부터 율법을 지킬 힘을

    성령을 통해 공급받는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라면 구약시대 모두가 언약에 실패자가 된다.

 

저자가 보는 관점은 늘 동일합니다.

구약에는 성령의 내주와 역사가 성도들에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들은 모세의 지적처럼 애굽에서 건짐은 받았지만 깨닫는 마음과 듣는 귀와 눈은 허락되지 않았다"(p.70)

 

만일 구약성도들에게 언약만 주어지고 깨닫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면 다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구절의 원래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29:4)

 

이 구절은 성령을 의도적으로 거스렸던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령을 따르면 그에 합당한 희생이 따르는데 그것을 알고서 거부한 것입니다.

이 구절을 가지고 구약백성들에게 실패자란 오명을 씌워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실패로 이끈 분으로 묘사해서도 안 됩니다.

 

*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해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 (의도적으로)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행28:26-27)

 

그러므로 두 구절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신29:4절의 말씀을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잘 인용했습니다.

★ 신29:4 → 사6:9-10(마13:14-15, 행28:26-27)

 

결론적으로 구약의 언약들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언약을 맺은 성도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이것을 다루지 않으면 언약을 맺은 목적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언약을 맺음으로 성도들에게 죄 사함이 주어졌고, 거듭났으며,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호칭들이 많습니다.

의인, 성도, 하나님의 백성, 총회(교회), 하나님과 동행, 완전한 자, 하나님의 나라, 아들됨...

이 모든 호칭들이 언약을 맺고 지킴으로 구약 성도들에게 주신 복들입니다.

 

언약신학에서 이런 목적들을 다루지 않는 것은 <성령의 내주에 대한 희미함> 때문입니다.

언약과 구약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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