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부활이란 단어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정도만 조금 언급했을 뿐 성도들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정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찾기 어렵습니다.
베드로는 시편을 인용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행2:24-28, 시16:8-11)
*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행2:27) 어떤 자들은 다니엘 12장 2절을 구약의 부활 구절이라 말하지만 확실치 않습니다. *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단12:2) 그러나 위 구절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시점이라 말합니다(단12:1). 또 관련구절을 보니, 위 구절은 영적인 각성을 말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12:10) 오히려 이사야 26장 19절이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 합니다. *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 놓으리로다(사26:19) 구약에서 부활이란 단어를 찾아보기 어려운데도 구약 백성들은 부활에 대해 너무도 확고했습니다. 아마도 성경의 전체적인 측면을 이해함으로 당연히 부활할 것을 믿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올에서 영혼이 건짐을 받는다는지, 성도들의 모임에 들어간다는 표현등을 통해 부활을 믿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이 부활을 고대하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행24:15) 실제적으로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본 유대인들의 부활은 확고부동했습니다. 평범한 여인 마르다의 고백입니다. *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믿나이다(요11:24) 부활의 시점을 <마지막 날>이라 확정짓습니다. 이 시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역시 동일한 말씀으로 유대인들과 같은 생각을 드러냅니다.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40)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예수님은 부활의 시점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그 날이 마지막 날에 있고(요6:39,44), 둘째는 그 시점에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날은 모두 주의 재림의 때로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완성되는 날입니다(렘48:47, 단10:14, 호3:5).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때 구약 성도들이 모두 부활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부활의 날은 마지막 날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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