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난해구절

제대로 된 성도 나다나엘

오은환 2014. 5. 23. 12:06

유대인 중에서 예수님이 가장 칭찬한 인물이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나다나엘이라 여겨집니다.

이방인들은 약속의 자손이 아니기에 제쳐두고, 가장 성경을 잘 알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가운데서

왜 유독 나다나엘이 이런 칭찬을 받아야만 했을까요?

베드로가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알았던 것을 나다나엘은 만나자마자 고백합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

  소이다   (요1:49)

 

나다나엘의 고백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지 않고는 이런 고백이 나올 수 없습니다(마16:17)

 

예수님은 단 한 가지로 나다나엘을 칭찬합니다.

그 하나가 바로 핵심이기에 모든 것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 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 이 없도다(요1:47)

 

언약 백성에게 있어서 참이 있고 거짓이 있을 수 있을까요?

참된 백성과 거짓 백성이 공존할 수 있을까요?

다 같이 언약을 맺고 생활했더라도 참 백성과 거짓 백성으로 갈라질 수 있을까요?

그럴수 있다는 것이 정답입니다.

 

말씀과 성령을 가진 이스라엘은 거기에 맞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죄인을 새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을 따라 <의><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4)  

 

제대로 된 성도라면 그 열매가 어떻게 나타날까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간사한 것이 없어야겠지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간사하단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싶어서 절대 놓지 못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요구하는

커다란 희생이란 대가를 치루고 하고 싶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고, 예수님은 그런 모습을 책망합니다.

 

 * ...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마13:15)

 

나다나엘은 이런 면에서 볼 때 하나님 나라를 사모했으며, 그 나라를 위해 실제적으로 큰 희생의 대가를 치룬

성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의 모습은 그 나라를 사모함에서 드러납니다.

사모한 자가 보게 되며, 희생을 할 수 있으며, 누릴 수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1:51)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새 언약 아래 살아온 우리들에게도 반드시 나타나야 할 열매들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성경을 읽고 교회 생활하면서 나타난 열매들이, 나다나엘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함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이 현재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임금되심을 믿고 계십니까?

나다나엘처럼 간사한 것이 없이 하나님 나라의 큰 가치를 발견하였으며, 그곳에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결단을 하고 계십니까?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참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간사한 자들은 그 나라에서 쫓겨 나며, 결코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