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란 책은 수많은 사람들을 깨우기도 하지만
수많은 생각들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가 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르침 곧 예수님의 계명들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명들과
다르다고 보는 신학자들이 많습니다.
세대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개혁주의자들도 그렇습니다.
구원의 방법에 있어서도 아직 일치된 견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방법들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또 다시 조금 변형되어서
등장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보장받기 위한 조건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의 계명들을
준수해야 한다" - 신율법주의
예수의 계명은 무엇입니까?
구약 율법을 새롭게 해석한 새 계명입니까?
구약시대에는 요구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오심으로 요구하는 계명들일까요?
예수님의 말씀(계명)들은 새 언약 시대에 새롭게 주신 말씀들이 아닙니다.
구약에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해준 메시지입니다.
수준 낮은 구약 시대의 말씀보다 더 우위에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두 시대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 이상 더하거나 빼거나 할 수 없습니다.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지금까지 신학계의 맹점은 이런 저런 프레임을 만들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복음적 관점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구약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엡2:12), 그러므로 구속함을 입은 자들이며,
그 결과 성령이 내주한 거듭난 백성들이란 프레임이 확고하게 견지했습니다.
반면 신학자들은 바울처럼 확고한 프레임이 없어서 복음서나 나머지 신약성경을 해석하는 것에서
많은 결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신구약의 통일성을 부르짖었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온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하나님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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