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보면 원본에 대한 사본을 접하면서 제거한 것 보다는 첨가한 것이 더 많았고,
유익했을 것이란 차원에서 접근했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사본에 대한 제거함이나 첨가함도 매우 중요한 문제지만,
후대에 해석으로 인해 첨가하거나 제거함 역시 우리 신앙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수많은 성경 사본들이 각기 조금씩 차이를 지니고 있습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의 말씀에 손을 댄 것일까요?
나쁜 의도로 손을 댄 자들로서 영지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초대교회 초기부터 말씀을 이러저리 필요한대로 사용했습니다.
영지주의에 대항해서 정경의 필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씀들을 보존하려고 애쓴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광활한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사본들이 조금씩 필사자에 의해
변형된 모습들이 드러납니다.
그 이유야 다 알 수 없지만, 상당수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과, 또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첨가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제거함으로 계시의 풍성함이 사라져버립니다.
말씀을 첨가함으로 계시에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1. 먼저 말씀을 제거함으로 풍성함의 상실과 피폐함에 대해 몇 가지만 살펴봅니다.
1) <구약 이스라엘에게서 성령을 제거>함으로 풍성한 교제가 없는 신앙과,
피폐한 신앙생활과, 자수성가형 인물들로 만들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도 구약 해석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많습니다.
성령을 보지 못함에서 오는 결핍은 너무도 큰 대가를 치루고 있습니다.
구약 성도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신약 성도들과 동일함을 보지 못합니다.
또한 구약의 선진들을 위대한 자수성가형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성령이 없이 구원에 이른 그 노력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오히려 신약 성도들보다도 훨씬 더 모범이 되지 않습니까?
때로는 구약을 실패한 역사로 기록하려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만 주시고 성령을 주지 않았기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고, 오히려 실패로 몰고 갔다라고까지
합니다. 구약 성도들의 삶도 불행함으로 끝내려 합니다.
성령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들에게 거듭남도 없고, 예배, 기쁨, 양자됨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구약 성도들은 어떻게 신앙생활 한 것입니까?
바울은 성령이 계시기에 풍성함(예배, 양자됨, 거듭남, 성령의 내주)이 있다고 가르칩니다(롬9:4,
고후6:16).
2) <성부의 오심을 제거> 함으로 계시록의 완성됨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재림은 악인들을 심판하며 의인들에게 상주시는 시간입니다.
그 장엄함은 오직 한 번 뿐이며, 가장 멋지고 위대한 축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없이 잔치를 치루려고 합니다.
성부 하나님이 아들을 위해 준비해 둔 모든 것들을 제거하고 초라한 잔치로 만들려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오셔서 다 준비하십니다(계1:4,8, 4:8)
가장 멋진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되는 성도들을 위해 준비해 놓았다고 보여줍니다(계3:12, 21:2,10)
3) <새 예루살렘 성을 제거> 함으로 하나님의 장막을 없애 버렸습니다.
성도들중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이 일반적으로 천국이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곳의 이름은 새 예루살렘 성 입니다.
신부를 위해 예쁘게 단장된 그곳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두 가지 점에서 미흡합니다.
무천년은 그곳을 성도라고 만들어 버렸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없어지고 성도들만 초라하게 세워 놓았습니다.
또 하나는 역사적 전천년이나 세대주의로 새 예루살렘 성의 도래를(계3:12, 21:2,10)
재림이 아닌 천년 왕국 이후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부의 오심만 제대로 보아도 이 문제는 곧 재림 때 내려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 첨가한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천년왕국을 만들어서 계시에 대한 대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천년왕국 문제는 역사상 가장 논쟁이 많은 곳입니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이런 이유로 재림 후 천년왕국에 대해 과민반응까지 보입니다.
그래서 천년왕국이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전체시간으로 바꾸었습니다.
세대주의와 역사적 전천년주의는 성경의 기록을 넘어가서 단단한 교리를 만들었습니다.
성경이 가리키는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라는 시간적 개념을 <천년 왕국>이란 공간까지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곳에서 이루어질 천년동안의 여러가지 이론들을 만들어서 대 혼란을 야기시켰습니다.
성경대로 <천년 동안 왕 노릇 한다>가 정답입니다.
어디서요? 성경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집니다.
너무 간단한 문제를 너무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2) <여러 세대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통치 형태에 대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을 많이 쪼개어서 일곱 세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별 통치 기준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들의 약점은 하나님의 통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방법론의 혼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을 보지 못함으로 인하여 여러 세대들을 나누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이것은 세대주의만이 아니라 무천년이나 역사적 전천년주의 역시 동일한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충격은 세대주의가 받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사람들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신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실행됩니다.
3) <구원에 대한 문을 활짝 열어 면죄부를 남발> 합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는 교리는 여러가지로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카톨릭이 연옥이란 교리를 만들어서 천국 문을 광활하게 열어 놓았더니, 이제는 개신교 내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급속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단 한 번의 신앙고백이 구원의 완성과 보장이라는 교리는 이상하지만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도의 견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성령의 진노하심에 대한 면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구원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여된 이유는 먼저 구약 성도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잘 알지 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옛 언약 아래에 있던 청중들과 십자가 사건 때 맺어지는 새 언약의
백성들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됩니다. 다시 말해서 옛 언약의 구약 성도들이나 새 언약의 신약 성도들 모두
구원이나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모두 동일함을 보여줍니다.
구원은 은혜(믿음)와 행함의 프레임으로 접근하면 계속해서 논쟁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을 믿음으로 거룩한 성령을 선물로 반드시 받아, 거룩한 성전이 되었을 때
보증합니다. 이런 구원의 보증은 장차 부활의 보증으로 연결됩니다.
말씀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은혜가 됩니다.
거기에서 확신이 생기고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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