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내려온 해석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면서 더 보완한다면 온전한 해석에 이를 수 있습니다.
* 보혜사(파라클레토스)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요14:26)
오순절에 임할 아들의 성령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파라(곁에서) + 칼레오(부르다, 간청하다, 요청하다, 훈계하다, 격려하다, 위로하다)의
합성어입니다.
보혜사(파라클레토스)는 성도들과 함께 하는 위로자, 대언자, 돕는자의 역할을 하는 분입니다.
문제는 보혜사로 지칭되는 존재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입니다.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
여기서 '또 다른 보혜사는 오순절에 임할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전에 있던 보혜사는 누구였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 있던 보혜사를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예수님으로 생각합니다.
공생애 기간에 육신의 몸을 입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모든 유대인들의 보혜사였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구약부터 공생애 기간까지의 성도들과 함께 한 아버지의 성령을 언급한 것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육신을 입은 예수님의 몸은 이동의 한계를 지녔습니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움직임에 제한을 받습니다.
그의 움직임은 제한적이며, 그의 존재는 어느 한 곳에 머무를 수 밖에 없습니다.
보혜사란 하나님으로서 전지 전능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칭호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보다는 하늘로 올라가서 성령을 보내 통치하심이 더 유익하다고
알려줍니다.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육신을 입은 인간 예수님은 지역적으로 한계를 지닌 분입니다.
그런 그가 떠나가는 것이 모든 성도들(유대인 + 이방인)에게 더 유익을 끼칩니다.
성령님을 통해 동시에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오실 성령님(아들의 영으로)이 또 다른 보혜사이고,
이전의 보혜사는 구약성도들에게 임했던 아버지의 성령님입니다.
구약시대의 아버지의 성령이 주로 유대인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아들의 이름으로 오는
오순절 성령님(아들의 영)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역사하십니다.
또한 계시를 드러냄에 있어서도 더욱 선명하고 풍성하게 역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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