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학원 1학년 1학기 때의 과제가 늘 생각납니다.
그 당시 일학년 숫자가 너무 많아서 누가 누군지 알아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일학년만 모두 열두 반이었고 몇 명인지는 셀 수도 없었습니다.
엠디비 반(1-2반)만 200명이 같이 수업했고, 목연과정의 한 반이 함께 했기에
무려 250명 정도가 같이 수업을 들었습니다.
이런 콩나물 교실에서 수업했기에 교수님들은 나름 친근해지기를 시도한 듯합니다.
그래서 신약신학 시간에 세 명씩 짝을 지어 하나의 과제를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복음서들을 비교하여 그 의미를 제출하라"
나와 함께 한 동료 전도사들은 경희대와 총신대를 졸업한 자들로 전공이 너무 달랐습니다.
그래도 신학을 전공한 총신 출신 전도사님이 있어서 쉽게 문제를 정했습니다만
'너무 자주 언급되고 어려운 곳'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훗날 보니 너무 잘 아는 본문은 설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선배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으면 그 때 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들의 것임이요(마5:1-3)
☆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6:20)
먼저 여러 주석서들을 찾아 보았고, 원문을 비교해 보았는데, 두 곳의 차이점보다는 유사하다는 견해가
다수를 이루었습니다. 또 수신자가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누가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했기에
그들이 잘 알아듣도록 했다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과제를 하면서 늘 생각났던 것은 복음서가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신학 초년생에게 복음서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였습니다.
서로를 비교했지만 시원한 답변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마태) - 가난한 자(누가)
* 천국(마태) - 하나님 나라(누가)
천국과 하나님 나라는 동일한 의미라는 것은 쉽게 알았지만, 심령이 가난한 자와 단순히 가난한 자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악몽처럼 끝났고 그 여운은 오랜 시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정답을 알게 된 후로는 다소 허전하기도 했습니다.
"모르면 다 어렵고, 알면 다 쉽구나, 수수께끼처럼"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가 세워져야 함을 알았습니다.
바로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심입니다.
구약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았고 그 결과 죄 사함이 일어난 구속받은
백성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또한 구속의 결과로 성령이 내주하는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 역시 확실하게 알아야 했습니다.
복음서의 성도들이 거룩한 성령이 내주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비로소 보였습니다.
구속함을 받았고 성령이 내주했기에 그들은 가난했던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애굽의 모든 보화를 포기한 그런 가난입니다.
*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6)
사람의 의지로 낮아지는 가난함이 아니라 내주하는 성령이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롬5:5, 신30:6)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 (우리는) ...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10)
총신을 졸업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과제를 완성해서인지 몸과 마음이 후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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