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를 다루는 일은 너무도 폭이 넓고 깊어서 그 끝을 알기 어렵습니다.
구약교회부터 시작된 교회역사는 신약 2천년의 역사를 더해야만 합니다.
또한 각 나라의 교회사가 연결되어 있기에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교회역사를 연구하여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유한한 인간으로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교회역사를 연구하여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신학사상들을 요약하고 집대성하는 일은
몇몇 단체가 나서도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방송에서 배덕만 교수가 종교개혁자들의 성찬에 대한 논쟁을 설명합니다.
루터와 로마 가톨릭 그리고 쯔빙글리의 이론들을 설명하면서 칼빈의 임재설을 그 중간이라고 하는데,
신학이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교회사학자들은 교리신학자들보다 훨씬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교회사학자들은 각 시대에 논란이 된 교리들까지 다뤄야하고 결론을 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사를 연구하여 결론을 도출할 수 없습니다.
최초의 교회사학자였던 유세비우스가 쓴 교회사는 종종 뜻하지 않는 곳에서 문제들이 나타납니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불쑥 등장하는 것이 불완전한 성경이해입니다.
정경의 범위에 대해서도 베드로후서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반면에 베드로 서신의 대상을 이방인들이 아니라 소아시아의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로 추정합니다.
"...그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니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것'으로서,
정경으로 인정된 서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은성, 엄성옥 역, p.123)
더 어려운 문제들도 많습니다.
어떤 자료를 인용하는데 그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유세비우스는 에뎃사 왕이 예수님에게 보낸 서신과 예수님이 에뎃사 왕에게 보낸 답신 두 통을
교회사에 기록했습니다.
시리아(아람)어로 기록된 편지를 340년에 번역한 것으로, 모두에게 유익을 줄 것이라 생각하여
자료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 안에는 예수님의 제자 70인 중의 한 사람이라 칭하는
다대오의 설교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때 '구약 성도들도 부활했다'는 주장이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예수)가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고난, 십자가에 못박혀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이제까지 한 번도
깬 적이 없는 그 죽음의 빗장을 열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여러 세대 동안 잠자던 죽은 자들과 함께
부활하신 일도 가르치겠습니다"(같은 책, 77)
마태복음 27장 52-53절에 대한 오해입니다.
*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유세비우스는 이 구절을 일부 죽었던 성도들의 회생이 아닌 구약 성도들의 부활로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 아니라 구약 성도들 가운데 일부라고 해야 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고전15:23).
교회사학자가 된다는 것은 신학에도 정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료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실수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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